어린 시절 교육 방송을 보면 종이로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종이접기 아저씨’가 있었다. 그는 마치 마술사같이 강아지, 박쥐와 같은 동물은 물론 집, 로봇 등 형태가 큰 조형물도 뚝딱뚝딱 종이를 접어 창조해냈다. 그런데 이 종이접기를 우주과학에 응용할 수 있을까?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이 종이접기 원리를 이용해 초대형 우주 태양 전지 패널을 개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나사 제트추진연구소에서는 종이접기 원리를 이용해 접었다 펼쳤다 할 수 있는 초대형 우주 태양 전지 패널, 접을 수 있는 몸을 가진 탐사로봇 ‘퍼퍼(PUFFER, ‘Pop-Up Flat Folding Explorer Robots)’를 만들었다. 우주공학뿐이 아니다. 수술용 나노로봇, 등 종이접기에서 영감을 받은 로봇들이 속속 개발되면서 누구나 할 수 있었던 종이접기가 우주, 의료, 수중 로봇공학 분야에 혁신을 불러오고 있다.

▲종이접기 원리로 만든 우주 탐사로봇 ‘퍼퍼’(PUFFER, ‘Pop-Up Flat Folding Explorer Robots), (출처: Rajamanickam Antonimuthu)


크고 무거운 태양전지패널을 종이처럼 간단하게 접어 운반한다!

종이접기의 매력은 가위나 칼, 접착제 없이도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간단히 접기만 해도 도형은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변한다. 또한 형태 변화가 용이하기 때문에 접어서 작은 형태로 제작할 수 있다. 미 항공우주국 제트추진연구소에서 개발한 거대한 태양 전지 패널은 접었을 땐 지름이 2.7m에 불과하지만 펼치면 무려 9배나 커진다. 이들이 태양 전지 패널을 만들 때 종이접기 원리를 적용한 것에는 부피를 줄여 작고 가벼운 상태로 만들어야 우주로 운반하기 쉽기 때문이다.

우주선에 실을 물건의 무게와 부피를 줄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재료에 따라 내구성 또한 단단하게 만들 수 있어 바람이나 지진에도 강한 조형물을 만들 수 있다. 종이접기 원리의 매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보통 로봇을 제작하는 비용보다 훨씬 더 저렴하고 빠르게 제작할 수 있다는 강점도 지녔다. 때문에 물 위나 물속에서 자유롭게 몸체를 움직여야 하는 수중 로봇에 종이접기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 효과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심해어를 모사한‘장어 로봇’, 수영하는 '나뭇잎 로봇'

서울대 기계공학부 연구팀은 지난 2019년 포르투갈 레비코프-니겔러 재단과의 협업 연구로 수중동물의 생체를 모사한 소프트 로봇을 선보였다. 이들은 펴지고 부풀리는 성질을 가진 펠리컨 장어를 보면서 종이접기 원리를 떠올렸다. 펠리컨 장어는 심해에 사는 물고기로 75cm의 기다란 몸체와 턱에 펠리컨과 같이 커다란 주머니가 달려있다는 점이  일반 장어와 다르다. 장어의 주머니는 접혔을 때는 납작하다 사냥을 할 때는 10배 이상 크게 활용할 수 있어 수중 탐사 외에도 다양한 곳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대 연구팀이 종이접기 원리로 펠리컨 장어의 모습을 모사해 만든 장어로봇(출처: SNU BioRobotics Lab)

장어 로봇에 이어 이 연구팀은 올해 초 종이접기 원리를 활용해 나뭇잎 모양의 수중 로봇도 개발했다. 연구팀은 낙엽이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신규 로봇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이 소프트 로봇은 물속에서 자신의 몸체 밀도를 바꿔 스스로 접는 움직임을 만들고 이를 동력으로 헤엄칠 수 있도록 고안됐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뭇잎이나 종이처럼 얇은 재질의 로봇으로 만들어야 했다.

연구팀은 얇은 피부 형태의 밀도 분포 제어기술을 개발해 마치 종이처럼 얇은 로봇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고, 나뭇잎처럼 보이는 부분은 고분자 화합물 폴리에틸렌 나프탈레이트 소재로 만들었다. 그 위에는 열선을 부착해 원하는 부위의 밀도가 변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 로봇은 크게 만들면 해양 기름 유출 사고 등이 발생했을 때 기름을 흡착하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물속에서 나뭇잎처럼 수영하는 나뭇잎 로봇 (출처: 출처 : YTN 사이언스 투데이)


소금쟁이와 집게벌레 움직임에서 영감을 얻다! 곤충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로봇 

소금쟁이는 엄청나게 빠르게 물 위를 떠다니며 움직이는 곤충이다. 소금쟁이가 물에 빠지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가벼운 체중과 6개의 다리를 이용해 액체 상태에서 표면이 가진 힘을 파괴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표면장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표면장력이 가능한 이유는 소금쟁이의 다리에 난 무수히 많은 털이 원인이다. 이 털들이 소금쟁이의 무게를 분산 시켜 가볍게 해 주고 기름기가 많아 몸체를 물 위를 떠 있게 한다. 여기에서도 종이접기의 원리를 발견해 로봇을 만든 이들이 있다.

미국 하버드 대학 비스 생체모방 공학연구소와 서울대 연구팀이 공동 개발해 만든 수중 도약 로봇 ‘소금쟁이 로봇’은 소금쟁이가 먹이를 잡기 위해 엄청나게 높이 뛰어오르는 모습에 착안한 것이다. 소금쟁이는 물의 표면장력이 깨지기 직전까지 최대한 다리에 힘을 축적해 접고 있다가 그 힘으로 도약한다. 연구진은 소금쟁이가 도약하는 동작에 종이접기의 접힘 구조로 적용해 로봇을 개발했다. 언뜻 보면 진짜 소금쟁이처럼 보이는 이 로봇은 오염이나 재해 지역의 수면에 뿌려놨다가 감시, 정찰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금쟁이의 도약 동작을 모사해 만든 수중도약 로봇 ‘소금쟁이 로봇’. (출처 : The New York Times)

로봇공학에서 종이접기 기술은 새로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 연구진은 집게벌레가 날개를 펴고 접는 방식을 보고 기존 종이접기 원리와 다른 새로운 접기 패턴을 개발했다. 이 신개념 종이접기 방식은 마치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탄성 종이접기(spring origami)’라고 불린다. 집게벌레는 주로 기어 다니지만 일부는 날개가 있어 날기도 한다. 날개 달린 집게벌레는 여느 다른 곤충의 날개와는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집게벌레는 평소에는 날개를 종이접기를 한 것처럼 작게 접고 있다 날아오를 때 순식간에 용수철처럼 날개를 펼치기 때문이다.

▲집게벌레의 날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는 새로운 종이접기 방식이 개발됐다.

이러한 특성은 집게벌레의 날개가 레슬린(resilin)이라는 단백질에 기반을 둔 이음새가 있기 때문이다. 레슬린은 잡아당기면 늘어나고 힘을 제거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탄력성을 가진 ‘엘라스토머 단백질’이다. 연구진은 기존의 종이접기 기술만으로는 집게벌레의 날개 접기 방식을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하다가 바로 이 ‘레슬린’을 이용해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것에 착안한 ‘탄성 접기 모형’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 새로운 방법을 이용해 지상 혹은 수중에서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 로봇, 펼칠 수 있는 우주선 모듈, 환자 맞춤형 형상을 가진 의학 디바이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밝혔다.


종이접기로 심해에서 우주까지, 종이접기 원리로 만드는 새로운 로봇의 세계

각종 연결 부품 필요 없이 접기만 하면 수배~수십 배 형태를 변형시킬 수 있는 종이접기 원리는 최근 변화하는 로봇공학에서 중요한 기술로 자리하고 있다. 딱딱한 하드웨어 중심의 로봇에서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 몸체를 가진 소프트 로봇들의 수요가 늘면서 한 장의 설계도로 만들 수 있는 종이접기의 원리가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종이접기 원리를 적용한 로봇들은 최소한의 무게를 싣고 우주탐사를 떠나는 우주선에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것으로 예측된다. 접어서 가장 작은 형태로 운반하고 우주에 가서는 다시 펼쳐서 사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접힘 동작이 자유로운 로봇들은 수중 탐사에서도 활약도가 클 것으로 보인다. 드론에 매달아 물속이나 구덩이에 빠진 물건을 집어 올리는 방안도 연구되고 있으니 말이다. 미래에는 영화 ‘빅 히어로(Big Hero)’에서 자유롭게 몸체를 변화시키며 육·해·공에서 대활약하던 풍선 로봇과 같이 편견을 깬 로봇들이 종이접기 원리를 이용해 개발될 것 같다. 앞으로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진 종이접기 원리로 만들어지는 로봇들의 활약을 기대해보자.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