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지나고 해가 뜨면 나무와 풀들이 햇빛을 받으며 재잘거리는 소리를 냅니다. 이렇게 식물들이 빛을 받으면 소리를 내는 건 비유가 아니라 실제 상황입니다. 광합성을 하면서 소리를 내는 거죠.

식물은 세포 속 엽록체에서 광합성을 합니다. 엽록체 안에는 광합성 반응중심(Photosynthesis reaction center)이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센터 주변의 색소가 빛을 흡수해 에너지를 광합성 반응 중심으로 전달합니다. 이 에너지에 의해 반응중심의 전자가 튀어 나갑니다. 이렇게 튀어 나간 전자가 여러 곳을 다니며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조금씩 나눠주는 것으로부터 광합성이 시작되지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아주 약하나마 전기장이 생성되고 또 변하게 됩니다. 이런 전기장의 생성과 변화는 주변 분자들의 구조를 바꾸고 부피도 변화시킵니다. 이 부피의 변화가 아주 작지만 음파를 만듭니다. 마치 우리가 캔을 꽉 쥐어 쪼그라트리면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광합성 과정은 또 다른 방법으로도 소리를 만듭니다. 광합성을 하며 식물은 물을 분해해 산소를 만들지요. 세포 내부의 산소는 압력을 변화시키고 이에 따라 또 소리가 납니다. 이 소리 또한 우리 귀에 들리지 않을 만큼 작지만 앞서 전기장에 의해 발생하는 소리보다는 조금 더 큽니다. 북을 두드릴 때 소리가 나는 것과 유사한 원리이지요.


빛을 받으면 소리가 나는 광음향 효과

한편 식물만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물질들도 빛을 받으면 소리를 냅니다. 우리 몸에도 이런 물질이 있는데 적혈구의 주성분,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이 그렇습니다. 이들이 소리를 내는 원리는 조금 다릅니다. 광열효과photothermal effect라는 것이죠. 빛은 일종의 에너지로 이를 흡수한 물질은 온도가 올라갑니다. 대부분의 물질은 온도가 올라가면 부피가 커지게 되지요. 그런데 빛을 아주 순간적으로만 쏘아주면 해당 물질은 빛을 흡수해서 부피가 커졌다가 주변에 열을 나눠주면서 다시 부피가 줄어듭니다. 이렇게 부피가 커졌다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압력이 변하고 음파가 발생하는 겁니다.

▲ 물체가 빛을 흡수해 온도가 올라가면 음향파가 발생하는 광음향 효과

이렇게 물체에 빛이 닿을 때 소리가 나는 현상을 광음향 효과 Photoacoustic effect라고 합니다. 빛을 받으면 소리를 내는 물질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건 전화를 발명한 미국의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40년 전인 1880년의 일이었지요. 금속판 앞에 얇은 틈을 낸 뱅글뱅글 도는 회전판을 설치하고 빛을 쪼이니 그 틈새로 빛이 들어갈 때마다 금속판에 닿으면서 소리가 나는 걸 발견했습니다. 또 금속판의 재질을 바꾸면 소리도 달라진다는 사실도 발견했지요. 그는 아마 빛에 닿은 금속판이 가열되었다가 식으면서 소리가 나는 것이라고 추론했습니다. 당시로는 확인이 불가능했지만 제대로 추리한 것이죠. 나중에 벨은 다른 동료들과 함께 금속뿐만 아니라 기체나 액체에서도 동일한 효과가 나타난다는 걸 확인했지요.

▲ 전화기를 시험하고 있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광음향 효과는 처음에는 기체 성분을 조사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질소 가스 속의 다른 기체 성분을 확인하는 것이었죠. 과자를 살 때 보면 봉지가 팽팽하게 부풀어 있는데 그 안에는 질소 가스가 충전되어 있습니다. 질소는 그 외에도 다양하게 공업용으로 활용되는데 그 안에 들어 있는 아주 적은 농도의 이산화탄소를 확인한 것이 시작입니다. 이는 물질에 따라 광음향 효과에 의해 발생하는 소리의 진동수가 다른 것을 이용합니다. 소리가 좀 더 높거나 혹은 낮은 것을 수신기를 이용해서 파악하는 것이죠. 이후 다른 기체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미량으로 들어 있는 기체들의 농도를 확인하는 데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현재는 광음향효과를 인체 진단에 활용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습니다. 가령 암이 몸속에서 얼마나 많이 퍼지고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할 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암은 자라면서 영양분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으로 혈관을 뻗어 나갑니다. 암세포 주변에는 그래서 비정상적으로 모세혈관이 많습니다. 이를 살펴볼 수 있으면 암 진단에 아주 유용하지요.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모세혈관의 적혈구 헤모글로빈은 특정 파장의 빛을 받으면 스스로 소리를 내는 특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광음향 진단장치를 통해 이를 확인하면 암이 퍼진 부위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 신속 정확하게 암 진단하는 ‘광음향 효과’ (출처: YTN 사이언스)


광음향 효과를 활용한 기술들

또한 이를 이용한 광음향 내시경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존 초음파 내시경의 경우 신체를 절개하지 않고도 장기 내부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큰 장점이 있습니다만 이미지 대조가 세밀하지 못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여기에 광음향 효과를 덧붙이자는 것이 핵심적인 아이디어입니다. 내시경을 식도를 통해 삽입한 후 레이저 펄스를 쪼여주면 해당 장기의 특정 물질이 초음파를 발생시키는데 이를 통해 장기 내부의 상황을 보다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지요. 특히 광음향 효과가 뛰어난 조영제 개발도 중요한데 이런 조영제를 이용하면 다양한 종류의 질병에 대한 진단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광음향 효과를 이용한 또 다른 기술은 광음향 현미경입니다. 포스텍에서는 기존 광음향 현미경에 비해 50배 이상 빠른 현미경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기본 원리는 나노초 단위로 레이저를 쏘아 그에 의해 발생하는 초음파를 감지해서 영상으로 구현하는 것이죠. 이를 통해 다양한 병변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광음향 현미경 연구의 시작은 인체에 대한 진단 필요성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현재는 이를 이용해 반도체 표면의 3차원적 구조를 분석하는 데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광음향 현미경을 이용하면 이미 만들어진 반도체에서 미세한 흠집이나 불완전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앞으로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물질에 대한 비파괴검사 방법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아주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레이저로 귓속말을 전달한다고?

광음향 효과의 하나로 마이크로파 청각 효과 또는 프레이 효과라는 것도 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레이더 기지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처음 발견한 현상입니다. 원래 빛은 우리 눈에 보이는 파장 영역을 가시광선이라 하고, 그 외에도 자외선이나 적외선, 전파 등 다양한 파장 영역이 있습니다. 레이더는 그 중 전파 영역의 빛을 이용해서 적군 비행기를 탐지하는 장치죠. 레이더에서 사방으로 전파를 쏘면 물체에 맞고 되돌아오는데 그를 파악하는 것이 기본 원리입니다. 이 전파를 수신하는 장치 옆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자꾸 이상한 소리를 듣는 일이 발생합니다. 조사를 해봤더니 전파가 수신 장치 부근 사람들의 뇌에 직접 작용해서 소리를 일으키는 광음향 효과였던 것이죠. 특히 전파 영역 중에서도 파장이 짧은 마이크로파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마이크로파 청각 효과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자연스레 마이크로파를 이용한 무선 통신에 대한 연구가 뒤따랐습니다. 특정인을 대상으로 마이크로파를 쏘면 아무런 기계 장치 없이 바로 뇌를 통해 음성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음성을 마이크로파로 변조해서 전송했을 때 실험대상자는 10개 단어 중 9개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를 내려면 아주 고출력의 마이크로파를 쏘아야 하는데 그러면 뇌가 너무 가열되어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오히려 적군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될 가능성이 더 큰 걸로 밝혀졌습니다만 현재 이를 이용한 무기를 개발하는 곳은 공식적으로는 없습니다.

하지만 광음향 효과를 이용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요. 이번에는 수증기를 이용합니다. 특정인의 귀 부근에 레이저를 쏘는 거죠. 레이저는 귀 주변의 수증기에 흡수되고 수증기가 가열되었다가 냉각되는 과정에서 소리가 발생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은 전혀 들을 수 없습니다. 2019년 발표된 링컨연구소 연구팀의 논문에 의하면 약 60데시벨의 소리를 2.5m 떨어진 사람에게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60데시벨이면 일반적인 수준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는 정도의 크기입니다. 물론 2.5m 정도면 직접 가서 이야기하는 게 편하겠죠. 하지만 더 먼 곳에서 비밀스레 전달할 이야기가 있다면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겠습니다. 광음향 효과를 활용한 다양한 기술이 앞으로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고 안전하게 만들기 기원해봅니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