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여름이 가까워지면서 얼음을 넣은 시원한 음료수를 찾기 시작하는 요즘이다. ‘음료수에 얼음을 넣으면 시원해진다’는 말을 과학적으로 표현하면 ‘얼음이 융해되면서 흡열반응이 일어나 음료수의 온도가 낮아진다’라고 할 수 있다. 열을 흡수하는 흡열반응을 하는 물질은 반응물보다 생성물의 에너지가 높아지게 되는데, 이때 주변의 열을 확~ 빼앗아서 달아나게 된다.

여러 가지 다양한 흡열반응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고체 → 액체 → 기체’로, 혹은 ‘고체 → 기체’로의 상태변화이다. 고체가 액체 또는 기체와 같이 상대적으로 운동이 활발한 상태로 변하려면 그만큼 에너지가 더 필요하다. 즉, 외부의 에너지를 흡수해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인데, 고체 상태의 얼음이 물과 수증기가 되기 위해서 주변의 열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따라서 이러한 물질의 상태 변화를 잘 이용하면 우리는 무더운 여름을 보다 시원하게 보낼 수 있다.

▲ ‘고체 → 액체 → 기체’, 또는 ‘고체 → 기체’로의 상태변화가 일어날 때 흡열반응이 나타난다.


대표적 흡열반응 '얼음과 소금'

얼음 위에 소금을 뿌리면 원래 0℃인 얼음의 녹는점이 낮아지면서 소금과 접촉한 부분의 얼음이 살짝 녹기 시작한다. 이러한 현상을 ‘녹는점 내림’이라고 한다. 얼음이 물로 녹는 융해는 고체가 액체로 변하는 상태변화이기 때문에 분자들이 더 활발히 움직이기 위해 주변의 열을 빼앗아서 달아난다. 얼음에 소금을 뿌리면, 소금이 물에 녹으면서 주변의 열을 흡수하는 흡열반응을 한다(용해열:-3.9 KJ/mol, 25℃, 1기압). 얼음의 융해되는 흡열반응에 소금이 용해되는 흡열반응까지 더해지면 얼음만 있는 상태보다 더 낮은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얼음에 소금을 뿌린 상태에서 이론적으로는 영하 20℃ 정도까지 온도를 낮출 수 있는데, 실제로 실험해보면 영하 10℃ 정도로 온도를 낮출 수 있다.

▲ 얼음 위에 소금을 뿌리면, 얼음만 있는 상태보다 더 온도를 낮출 수 있다. 오른쪽 사진을 보면 온도계가 영하 10℃ 부근까지 온도가 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얼음보다 강력한 흡열반응 '드라이아이스와 에탄올'

얼음을 꽁꽁 얼리는 냉동실 온도가 영하 20℃ 정도이다. 그런데 극강의 시원함을 느끼고 싶다면 보통의 얼음이 아니라 드라이아이스를 사용하면 된다.

▲ 영하 78.5℃에서 승화하는 드라이아이스, 드라이아이스 속에 온도계를 넣으면 영하 75℃ 이하로 온도가 낮아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산화탄소 ‘고체’ 상태인 드라이아이스가 바로 ‘기체’로 승화하게 될 때에는 엄청난 부피 변화와 함께, 주변의 열을 어마어마하게 흡수하게 된다. 따라서 주변 온도는 영하 75℃ 이하로 낮아지게 되고, 이렇게 강력한 흡열반응을 하고 있는 드라이아이스 주변에 에탄올을 부어 놓으면 그 냉기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 드라이아이스의 흡열반응을 이용한 슬러시 만들기 실험

플라스틱 컵에 요구르트 과일 주스 등의 음료수를 붓고 드라이아이스와 에탄올이 담긴 통에 컵을 넣어둔 후, 1분 정도 기다렸다가 슬슬 저어주기 시작한다. 약 3분 정도면 맛있는 초스피드 슬러시 완성!! 드라이아이스의 강력한 흡열반응 때문에 에탄올 통 겉면에 주변의 수증기가 얼음 결정으로 되는 상태변화가 일어난 것을 관찰 할 수도 있다.


뿌옇고 불투명한 얼음이 되는 건 '급속냉동' 때문!

드라이아이스와 에탄올을 이용해서 영하 75℃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 얼음을 얼리게 되면 짧은 시간 내에 얼음을 만들 수 있지만, 뿌옇고 불투명하면서 다소 푸석푸석해 보이는 얼음이 만들어지게 된다. 보통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냉동실의 온도는 영하 20℃ 정도인데, 이 정도 온도에서 얼리는 얼음 역시 완전히 투명하지는 않다. 급하게 얼게 되면서 순수한 물이 냉기와 접하는 바깥쪽부터 먼저 얼고, 칼슘이나 마그네슘 등의 미네랄 성분 등이 가운데로 몰려 중심부가 탁하게 얼음이 생성된다. 또한 물에 녹아있던 공기가 기포 상태로 얼음 속에 갇히고, 얼음의 결정이 급하게 생성되었기 때문에, 강도 또한 비교적 낮은 얼음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 드라이아이스와 에탄올을 이용하면 짧은 시간 내에 얼음을 얼릴 수 있지만, 뿌옇고 불투명한 상태의 얼음이 만들어지게 된다.


편의점 얼음은 왜 맑고 투명하고 단단할까?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물은 수돗물을 받아서 보리차로 끓여 마시는 것이지, 병에 든 물을 돈을 주고 사서 마신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제 물은 사서 마시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는데, 요새는 얼음까지 사 먹는 시대가 되었다. 가정마다 냉장고가 있고, 얼음을 얼릴 수 있는데 왜 사람들은 얼음을 사 먹을까? 집에서 얼린 얼음보다 내가 직접 구입한 내돈내산 얼음은 더 질 좋은 얼음이라 할 수 있다.

▲ 제빙공장에서 제조된, 강도와 투명도가 모두 높은 얼음


품질이 좋은 얼음의 조건으로는 강도와 투명도를 꼽을 수 있는데, 단단하면서도 투명한 얼음의 비결은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 그리고 긴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제빙 공장에서는 물의 어는점인 0℃보다 낮으면서 최대한 가까운 온도에서 48시간 이상 천천히 얼리기 때문에 얼음의 강도와 투명도를 높일 수 있다. 그래서 영하 8℃ 정도의 소금물을 이용하여 여기에 얼음 틀을 넣고 물을 천천히 얼린다. 이렇게 용기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얼리다가 중심부로 몰린 미네랄 성분을 포함한 부분이 얼기 전에 건져내어 중심부가 빈 상태의 얼음을 만들면 보다 투명한 얼음을 제조할 수 있다.

돈을 주고 구입한 투명하고 단단한 얼음은 음료에 넣어도 빨리 녹지 않아 오랫동안 차가움을 유지하고 음료의 맛을 빨리 희석시키지 않는다. 투명하고 깨끗한 느낌 때문에 음료를 더욱 맛있게 보이게 하는 효과까지 있다.


동그란 얼음은 오래오래 시원함을 즐길 수 있다.

최근에 편의점에 가면 2종류의 컵 얼음을 만날 수 있다. 하나는 원래 보던 잘게 부수어 놓은 얼음이고, 또 하나는 이른바 ‘빅 볼’ 얼음으로, 원래 위스키 전문점이나 칵테일바에서나 볼 수 있는 구 모양의 얼음이다. 이 두 얼음의 가장 큰 차이는 사실 가격인데, 빅 볼 얼음이 약 2배 더 비싸게 판매되고 있다.

▲ 편의점의 구 모양 얼음을 꺼내서 손에 들어보았다. 강도와 투명도가 매우 높은 얼음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수학적으로 구의 가장 큰 특징은 ‘같은 부피일 때, 표면적이 가장 작다’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강도의 얼음이란 가정 하에, 구 모양의 얼음이 음료와 접촉하는 면적이 작아 얼음의 융해속도가 느려지게 되고, 더 오랜 시간 동안 차가움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날은 앞으로 점점 더워지게 되니 얼음의 융해속도를 높여 음료를 빨리 차갑게 식혀서 먹고 싶다면, 보다 저렴하고 표면적이 넓은 잘게 부순 얼음을 선택하는 것이 답이다.

▲ 구 모양의 얼음은 표면적이 상대적으로 작아 음료와 덜 접촉하게 되도, 따라서 천천히 녹는다.


고품질의 얼음을 직접 만들고 싶다면??

최근에는 실리콘 소재의 동그란 얼음 틀을 판매하고 있어서 집에서도 구 모양의 얼음을 만들 수 있다. 여기에 좀 더 투명도와 강도를 높이고 싶다면 냉동실 온도를 먼저 조절하면 된다. 필자가 사용하는 삼성 비스포크 냉장고의 경우 냉동실의 온도를 영하 17℃ ~ 영하 23℃ 사이에서 조정할 수 있다. 가장 높은 온도인 영하17℃로 조정하고, 얼음을 만들 물은 한번 끓여서 물속에 녹아 있는 공기를 미리 제거한다. 또한 얼음 틀을 에어캡 등의 단열재로 감싸서 냉동실에 넣으면 좀 더 천천히 얼릴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제빙공장에서 만들어지는 투명하고 단단한 얼음에 보다 가까운 상태로 만들 수 있다.

오늘은 물이 얼면 얼음이 된다는 상식적 차원을 넘어, 흡열반응을 통한 얼음의 생성 원리와 냉동 조건에 따른 특성의 차이까지 살펴보았다. 본격적인 여름철을 앞두고 더욱 자주 마주하게 될 얼음. 오늘 배운 과학적 지식으로 얼음을 바라본다면 이제는 그 얼음의 탄생 과정까지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