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빛으로 가득 차 있다. 여름 하늘의 푸른 하늘색도 눈부시게 빛나고, 뙤약볕의 태양은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하얗게 빛난다. 태양의 가시광선 아래에서 우리는 세상의 모든 컬러를 바라보고 인식할 수 있다. 만약 태양이 없다면 세상의 컬러는 어떻게 보일까?

모든 색의 기준은 근본적으로 정오의 햇빛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태양이 없는 세상에는 컬러도 없다고 가정할 수 있다. 흑체(黑體)와 같은 암흑 그 자체일 것이다. 밤에 방안의 불을 끄고 어둠에 눈이 적응하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면 모든 색이 다 검정에 가까운 무채색의 공간으로 보인다. 컬러는 그래서 항상 빛을 전제로 한다. 빛이 없으면 컬러도 없다. 뉴턴의 발견 이전부터 사람들은 색이 빛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활에서 이미 체득했다. 다만 어떤 빛인가에 따라 대상과 공간의 컬러도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은 오랜 논쟁을 야기했다. 사물의 고유색 논쟁부터 인상주의 그림까지 컬러는 항상 수수께끼와 같았다.

햇빛은 지구 전체를 고루 비추고 있지만, 땅 위의 볕은 시시각각 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날씨와 계정에 따라 빛이 다르게 느껴지고, 하루 종일 빛깔이 변한다. 아침의 햇빛은 푸르스름하지만 저녁의 볕은 노르스름하다. 똑같은 나뭇잎도 시간에 따라 다른 녹색으로 변한다. 같은 시간의 햇빛이라도 산 위에서 보는지 바다에서 내리쬐는지 또 다르다.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광이 동일하다고 할지라도, 이 모든 다름은 지구의 대기 변화에 따른 변덕이다. 전 세계의 모든 슈퍼컴퓨터로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미묘한 지구 대기의 변화는 인간이 감지하는 빛의 변화를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장마철 칙칙하고 눅눅한 회색의 하늘이 개이고 먹구름 한 틈에서 햇빛 한 줄기가 나오는 순간의 감탄은 누구나 경험하는 빛의 귀환이다. 운이 좋으면 반원형의 무지개를 목격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빛과 대기가 만나서 태어나는 컬러의 환영이다.


빛으로 그린 그림, 영상의 기원

▲ 제임스 오스코프가 1755년에 그린 카메라 옵스큐라 삽화를 보면 외부의 풍경이 벽의 작은 구멍을 통해 어두운 방 안에 역상으로 맺힌다는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인간이 만든 최고의 환영(illusion)은 바로 영상(映像)이다. 영상은 빛으로 가득 찬 세상을 빛으로 기록한 것이다. 인간의 빛은 어둠 속에서 밝히는 수단이었던 것처럼, 영상은 밝음과 어둠을 한데 모아서 만들었다. 최초의 영상 개념은 유럽의 바로크 시대에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로 등장했다. 카메라는 이탈리아어로 ‘방’이고, ‘옵스큐라’는 어둡게 밀폐되었다는 뜻이다. 어두운 방 안에 작은 틈으로 외부의 빛이 들어가면 뒤집힌 역상이 방 안에서 보인다는 원리에서 착안한 장치다. 이것은 자연의 원리를 인공물에서 발견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더 옛날부터 구멍 난 동굴이나 움집에서 먼저 발견했을 것이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외부의 빛을 상자 안에 가두는 장치로 소형화되었고, 궁극적으로는 화가들이 대상을 비추어 정확하게 스케치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 카메라 옵스큐라는 그림등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발명한 광학 장치로, 많은 화가들이 이 기술을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 이는 사진술의 전신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네덜란드 바로크 시대를 연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어(Johannes Vermeer)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와 같은 많은 사실적인 그림을 남겼다. 동명의 영화에서는 화가가 하녀에게 새로 들어온 카메라 옵스큐라 장치를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맹랑하게도 하녀는 주인에게 “이것이 그림을 어떻게 그리라고 가르쳐주는 장치군요.”라고 대꾸한다. 화가는 무안해하며 그냥 도와주는 것뿐이라고 얼버무리는데, 아무래도 얼리 어댑터의 본심을 들킨 표정이다.

▲ 네덜란드 바로크 시대의 유명한 화가 페르메어가 남긴 가장 대표적인 작품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에는 완전한 검정의 배경에서 밝게 미소 짓는 소녀가 표현되었다. 푸른색 머리띠와 붉은 입술의 대비는 귀고리의 하이라이트와 함께 인물을 빛나게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이 밋밋하게 사실적이었다면, 바로크 시대의 그림은 마치 HDR 영상처럼 강한 대비와 화려한 색상을 구현하였다. (출처: 위키피디아)

바로크 시대의 서유럽 화가들은 모두 빛에 빠져들었다. 첨단 카메라 옵스큐라 장치의 이점을 활용하는 유행도 있었지만, 그림 안에서도 빛과 어둠의 대비를 즐겨 표현했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이 이전보다 더 사실적인 묘사와 성스러운 표현에 몰두했다면, 바로크 시대 화가들은 풍부한 명암의 표현이 가져오는 극적인 효과에 집착했다. <모나리자>의 배경과 같은 의미 없는 풍경이 사라지고, 순수한 블랙의 배경이 선호되었다. 칠흑같이 검은 배경 앞에 밝은 톤의 인물을 배치해서 드라마틱한 대비 효과를 표현했다. 머리 위에서 비추는 가상의 조명이 그림 속의 인물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무대 위의 주인공에 주목하는 연극의 한 장면과 같다. 극적인 명암의 대비 효과는 그림을 사실적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바로 눈 앞에 펼쳐지는 실재(實在)처럼 보이는 효과를 자아냈다. 이와 같은 ‘빛의 그림’은 훗날 영상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영상은 시간 위에 빛으로 그린 그림이다.


빛의 원리를 이용한 영상 예술의 시작

최초의 영상으로 볼 만했던 사례는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로베르송(Robertson)이라는 예명으로 불렸던 발명가 겸 마술사 에띠엔 가스파 로베르(Étienne-Gaspard Robert)는 원래 벨기에 출신의 물리학자였는데, 프랑스로 넘어와서 예술가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예술가를 꿈꾸는 물리학자였던만큼 그의 상상과 실천은 항상 무모했다. 영국 전함을 불태울 만한 초대형 돋보기를 제안했는데 프랑스 정부가 거절한 일화도 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봤던 영사기 공연을 모방하여 빛과 반사 장치로 형상을 무대에 떠오르게 표현하는 기술을 고안하고 ‘매직 랜턴(Magic lantern)’이라는 특허를 따냈다.

▲ 매직 랜턴은 강한 불빛을 그림, 사진 등에 대어 그 반사 빛을 렌즈에 의해 확대하여 영사하는 장치를 말한다. 현대 슬라이드 영사기의 선조가 된다.

이 영사(projection) 장치로 연출한 세계 최초의 영상 쇼가 바로 <판타스마고리(Fantasmagorie)>였는데, 나름대로이면 투사(rear projection) 방법과 왁스로 코팅한 거즈로 만든 반투명 스크린을 써서 요즘의 홀로그램과 같은 효과를 구현했다. 물리학 교수로 출발한 그의 인생은 엔터테이너로서 성공을 거두었다. 지금의 시각에서는 다소 엉뚱한 길로 빠진 인생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가 연구한 빛의 물리학은 영상 기술의 모태가 되었다.

▲ 마술 공연 전문가 로베르송이 1797년 파리 시내의 극장에서 선보인 영상 공연 <판타스마고리>는 당시 대중에게 큰 충격을 준 영상 쇼였다. 영사기의 원리를 통해 객석 논 앞에 펼쳐진 악마의 영상은 관객을 놀라 자빠지게 만들었다. 당시 공연 장면을 그린 삽화를 보면 영상 속 악마를 향해 칼을 빼 드는 남자부터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까지 격정적인 반응을 묘사하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본격적인 영상은 사진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한다. 사진도 역시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빛을 이용해서 자동으로 풍경을 그릴 수 있다는 사진의 매력은 수많은 실험과 도전자들을 끌어모았다.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던 루이 르(Louis Daguerre)도 재능이 많은 화가였다. 공연장도 설계하고 미니어처 풍경을 활용하는 디오라마(diorama) 기법도 발명했다. 그의 호기심과 발명가 정신은 결국 사진이라는 획기적인 매체를 발명하는 데에 이른다.

▲ 다게레오타입(Dagurreotype) 카메라와 해당 카메라로 촬영한 다게르의 초상화. 다게레오타입의 카메라는 루이 다게르에 의해 1839년에 소개되었다. 후대에 개발된 다른 사진술들의 단가가 싸지고 효율이 높아지기 전인 1860년대까지 사용되었다.

흔히 다게레오타입(Dagurreotype)이라 부르는 그의 발명품은 은판을 빛에 감광시켜서 이미지를 형성하는 방식이었는데, 필름의 발명 이전에 사용된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 처리(image process) 기술이었다. 감광에 충분한 빛을 작은 렌즈를 통해 얻기 위해서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초상화 사진 한 장을 만들기 위해서 몇 시간 동안 꼼짝 않고 카메라 앞에 앉아 있어야 했지만, 신기한 프로필 사진을 남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줄을 서서 대기했다.

이처럼 매직 랜턴과 사진 기법은 다양한 영상 장치의 발명을 촉발했고, 1895년 뤼미에르 형제(Auguste and Louis Lumière)가 촬영한 영상물로 시연한 최초의 영화 상영회에서 정점을 맞았다. 몇 년 뒤 1902년 프랑스에서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éliès)는 초기의 필름 매체를 최대한 활용해서 세계 최초의 SF 영화 <달까지의 여행(Le Voyage dans la Lune)>을 발표했다. 그 선구자들 이후로 100년이 지나 디지털 영화와 방송이 시작되었으니 영상을 향한 인류의 노력은 참으로 유구하다.

▲ 1902년 조르쥬 멜리에스가 제작하고 상영한 <달까지의 여행>은 당시 문명에서 상상 가능한 모든 장면을 보여주었다. 포탄 모양의 우주왕복선을 망치를 두들겨 만드는 장면에서 20세기 후반에 현실화한 우주 개발의 꿈을 미리 엿볼 수 있다. 원래 이 영화는 흑백으로 제작되었지만, 훗날 테크니컬러 기술로 채색한 판본도 상영되었다고 한다. 아직 컴퓨터 그래픽(CG)이 없던 시대였다. (출처: 위키피디아)


빛으로 그리는 영상과 컬러

영상은 다양한 의미와 미디어를 지칭한다. ‘비춰진 형상’이라는 한자의 뜻 그대로라면 로베르송의 투사 영상이나 극장의 필름 영사기가 그 정확한 형식일 것이다. 그러나 사진과 영화의 등장 이후 영상의 의미는 폭넓게 확장되었다. 지금은 영상이라면 동영상이나 디지털 영상을 가리킨다. 이제 정지 영상은 그냥 이미지이거나 사진을 뜻한다. 빛으로 비춘 이미지의 개념에는 우리가 늘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화면 속 영상도 그 범주에 속한다. 디지털 기술로 제어되는 디스플레이 장치도 빛을 이용해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다만 화면의 크기가 작고 픽셀(pixel)이라는 입자도 매우 조밀하기 때문에 조금 더 첨단 장치로 보일 뿐이다. 움직이는 이미지의 연속이라는 의미에서 영상은 매우 복잡한 기술적 요소들로 완성된다.

화면을 구성하는 픽셀의 수량은 해상도(resolution)를 뜻하는데, 면적당 픽셀 수가 많을수록 해상도가 높다. 각 픽셀이 낼 수 있는 명암의 범위는 계조(階調)라고 하는데, 명암의 범위를 더 넓고 촘촘하게 표현할수록 좋은 영상 장치다.

이와 유사한 동적 명암비, 즉 다이내믹 레인지(dynamic range)는 화면 속 대상을 얼마만큼의 명암 단계로 구현하는지 결정한다. 각 픽셀이 RGB의 삼원색 요소로 구성되니까 계조가 풍부하다던가, 동적 명암비가 높다는 말은 컬러의 구현 범위가 넓다는 의미와 같다. 그러나 지나친 명암비는 자칫 과장되고 어색한 질감을 내기 때문에 적정한 선을 넘치지 않도록 한정해야 된다.

질 좋은 컬러 영상을 만들기 위해 영상 전문가들과 기술자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1930년대를 풍미했던 테크니컬러(Technicolor) 기술이 아직 살아있는 이유도 컬러 영역에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더 그럴듯한 컬러를 만들기 위해 촬영 기사는 기본적인 노출이나 셔터 스피드뿐만 아니라 *화이트 밸런스(white balance)와 *LUT 결과를 미리 계산한다.

*화이트 밸런스란 영상의 흰색 개체가 실제로 흰색으로 보이게 하는 색 온도를 말한다.

*LUT의 원리는 색상의 기본값인 RGB의 무수히 많은 입력값을 다른 새로운 색상표에 대응하여 다른 색감으로 출력하는 방식이다.

▲로그(Log) 프로필로 촬영한 영상(좌)은 희뿌옇게 보이지만, LUT를 적용한 컬러 그레이딩 결과(우)는 실감 나는 색감을 드러낸다. 보통 어둡게 촬영된 영상보다는 밝게 촬영된 영상이 색 보정에 유리하다고 하는데, 흰색 영역이 넓게 확산되었다면 색 보정도 소용없다. 세상 모든 컬러는 순수 흰색과 검정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카메라 장치는 친절하게도 하얗게 날아가는 색 영역을 빗살무늬(zebra pattern)로 경고하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에 따라 사물의 색은 달리 보이기 때문에 색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은 비교적 철저하게 지켜진다. 그래도 문제가 생기면 영상 편집자들은 촬영 과정에서 놓치거나 틀어진 색을 보정(color correction)하고, 가능한 최대치의 색감을 내기 위해 적당한 타협 없이 여러 번 수정을 거듭한다. 마치 유능한 통역사처럼 평균적인 고화질을 유지하는 레퍼런스 디스플레이(reference display) 장치는 영상의 제작 과정 내내 필요하다. 영상 장비 업체들이 사전에 제작해서 제공하는 로그(Log) 프로파일은 대개의 경우 일반인의 눈에 뿌옇게 보인다. 촬영된 대상의 모든 명암과 색정보를 최대한 넓게 담으려는 노력은 결국 이렇게 희뿌연 상태로 귀결된다. 거기에서 빛을 더하고 색을 되살리는 컬러 그레이딩(color grading)과정을 거치면 세련된 결과가 나타난다. 빛을 더하고 빼는 근본적인 과정에서 컬러도 생사를 함께한다. 빛은 컬러의 집합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