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 부산지하철의 서면역에는 특이한 보도블록이 생겼다. 행인들이 그 위를 걸어 다니면 전기가 만들어지는 특수 보도블록이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자신이 만든 전기로 스마트폰을 충전하고, 야구 게임을 즐기며 신기해했다. 비슷한 시기, 네덜란드에는 발을 구르며 춤추면 바닥에서 화려한 조명이 들어오는 댄스 클럽이 생겼다.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춤추면 더 강렬한 불빛이 뿜어져 나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두 곳에서 선보인 기술의 공통점은 바닥을 눌렀다는 것. 바로 '누르는 압력으로 전기를 만든다'는 '압전 효과'를 활용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압전 효과란 무엇이기에 발을 내딛기만 해도 전기를 만든다는 걸까?


분자 구조가 변하면 전기가 흐른다? 정압전 효과 VS 역압전 효과

압전 효과는 어떤 물질에 압력을 가했을 때 전기적인 변화가 생기는 현상을 말한다. 앞서 소개한 사례만 보면 최근에 밝혀진 새로운 현상일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역사는 무려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의 물리학자 베크렐이 기계적인 압력과 전기적인 변화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 뒤 마리 퀴리의 남편인 피에르 퀴리가 형인 자크 퀴리와 함께 처음으로 석영과 황옥 같은 광물에서 압전 효과를 확인했다.

▲ 압전 효과를 보여주는 모식도. A처럼 입자들이 서로 일정한 거리로 떨어져 정육면체를 이룰 때는 전기적 성질이 나타나지 않지만, B처럼 가로 방향으로 압력을 주거나, C처럼 양쪽으로 잡아 당기면 입자의 배치가 찌그러지면서 전기적 성질이 나타난다.

압전 효과가 나타나는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고체물질은 기본적으로 같은 모양을 한 분자 가 반복되는 구조로 이뤄져 있는데, 양전하(+)와 음전하(-)의 분포가 균형을 이뤄 전기적으로 중성을 띤다. 위 그림처럼 규칙적으로 양전하와 음전하가 배열돼 있어 +와 –가 상쇄되는 구조를 가졌다. 그런데 여기에 힘을 줘서 고체의 결정 구조에 미세한 변화가 생기면 전하의 분포가 변하고, 순간적으로 전기가 흐르게 된다. 물질에서 한쪽은 상대적으로 +가 강하고, 다른 쪽은 –가 강해져 물질의 전하 분포가 음과 양으로 나뉘면서 전자가 흘러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를 ‘정압전 효과’라고 부른다.

반대의 현상도 가능하다. 전기를 흘려보내서 물리적인 힘을 가해 변형된 물질의 구조를 원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처음 상태처럼 물질 내부의 전하 분포가 균형을 이루게 되며, 더 이상 자체적으로는 전기를 생성하지 않게 된다. 이를 ‘역압전 효과’라고 한다.

이처럼 원리 자체는 간단하지만 압전 효과를 잘 나타내는 물질이 많지 않고, 너무 큰 힘을 가하면 물질이 부서져버릴 수 있기 때문에 정압전 효과와 역압전 효과를 실험적으로 구현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것이다.

▲ 압전 효과란? 압전 소자의 제작과 응용 (출처: 피아이코리아 유튜브 채널)


전쟁에서도 활용된 '압전 효과'

▲ 잠수함의 음향탐지 장치

압전 효과를 활용한 초창기 기술은 음파탐지기와 무선통신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은 잠수함 탐지를 위한 수중 음향 탐지 기술에 압전 효과를 적용했다. 금속판 사이에 얇은 수정을 끼워 넣어 고주파를 발생시키거나 되돌아온 음파를 측정하는 데 압전 효과를 활용했다.

또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국의 벨연구소에서 초소형 무선 통신 장비를 만드는 데 압전 효과를 활용해 전투기에 탑재할 수 있는 가벼운 통신 장비를 만들었다. 그 결과 전투기 조종사들 사이에 통신이 가능해져서 적군에게 합동으로 융단폭격을 가할 수 있게 됐다.

전쟁이 끝난 후 압전 효과는 주로 음향과 관련된 기술에 쓰였다. 마이크와 스피커에도 이 원리를 이용한 제품들이 등장했다. 마이크는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그 중 압전 효과를 이용하는 마이크의 경우 소리가 들어가면 압전 소자가 진동하면서 전기 신호가 생기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반대로 압전 소자를 사용하는 스피커에서는 마이크에서 온 전기 신호가 압전 소자를 진동시키는 역압전 효과가 발생해 소리가 생성된다. 이처럼 마이크와 스피커 같은 음향 기술은 정압전 효과와 역압전 효과를 이용하는 대표적인 기술이다.


압전 효과로 불을 켜는 가스레인지

음향 기술보다는 단순하지만, 실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압전 효과의 응용 기술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가스레인지다. 가스레인지는 점화할 때 스위치를 누르거나 돌려야 하는데, 이때 ‘딱’ 하는 소리가 나면서 불이 켜진다. 이 타다닥 하는 소리가 전기로 스파크를 일으켜서 가스에 불을 붙이는 과정에서 나는 소리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스위치를 누르거나 돌릴 때 연결된 격발기가 압전 소자를 때려 압력을 준다. 이때 순간적으로 강한 전기가 발생하고, 가스가 나오는 노즐 부분에서 그 전기가 방전되면서 불꽃을 생성해 불을 붙이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없으면 우리는 성냥을 켜서 가스레인지를 켜야만 한다. 매일 집에서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스레인지도 압전 효과 덕분에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압전 효과는 미래 어떤 기술에 활용될 수 있을까?

▲ 삼성디스플레이가 2018 SID 전시회에서 공개한 SoD 기술

IT 시대에 들어 다방면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압전 효과를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하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디스플레이와 음향을 융합한 기술이다. 예컨대 삼성디스플레이는 2018년 미국 LA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SID) 전시회에서 ‘사운드 온 디스플레이(SoD)’를 공개했다. 해당 기술은 압전 효과를 이용해 스피커 없이 디스플레이 자체에서 소리가 나도록 만든 것이다. OLED 패널 뒤에 진동을 일으키는 부품인 ‘액추에이터’를 장착해 액추에이터가 OLED에 진동을 전달하면 OLED가 떨리면서 공기 중에 소리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SoD 기술은 전면 스피커 영역을 없앨 수 있어 풀스크린 구현이 더욱 쉬워진다는 장점이 있기도 하다.

이 외에도 여러 전자회사가 압전 효과를 이용해 스피커를 따로 달지 않고 디스플레이 자체에서 소리가 나게 만든 스마트기기와 TV를 만들었는데, 이 기술의 장점은 입체적인 음향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스피커는 작동시키면 전체에서 소리가 나지만, 압전 효과를 이용하는 사운드 온 디스플레이의 경우 화면의 일부에서만 원하는 소리가 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 신호를 원하는 부위에 주는 방식으로 소리를 부분적으로 생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비행기가 화면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장면에서는 비행기의 궤적을 따라 소리가 나도록 만들 수도 있다.

압전 효과를 이용한 또 다른 대표적인 첨단 분야는 센서다.

아주 작은 압전 소자를 써서 귀와 피부 등 인간의 생체 기관과 유사한 기능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건재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작고 유연한 압전 모바일 음성 센서를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기존 마이크와 비교해 7배 이상 먼 거리에서도 정확하게 소리를 인식하고 화자를 식별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했다.

또 다른 국내 연구팀은 아주 작은 압전 소자를 배열해 촉각을 구현하는 센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 사람마다 민감도가 다른 촉각을 학습하는 인공지능 아바타 기술을 선보였다. 사람의 손가락을 모방한 촉각센서 시스템은 사람 손가락의 촉각 세포 분포와 유사하게 1㎠의 좁은 면적에 32~64개의 센서를 배열해 물체의 온도, 단단함, 형태를 감지하는 장치다.

그리고 촉감 아바타 시스템은 촉각센서가 옷감을 누르고 문질러서 옷감 표면의 물리적인 특성(거칠기나 단단함 등)을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개개인별로 다를 수 있는 촉감에 따른 감정을 90% 이상의 일치율로 구현해 내는 것이 가능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기술은 처음 소개한 보도블록이나 댄스 클럽의 바닥과 유사한 소규모 에너지 생성 기술이다. 잉고 버거트 스위스 취리히연방 공대 교수팀이 올해 3월 발표한 연구 결과로, 나무의 압전 효과를 극대화하는 기술이다. 원래 나무에서도 압전 효과가 나타나는데, 연구팀은 나무에 잔나비걸상버섯라는 특정한 종류의 버섯균을 감염시킨 뒤 썩게 만들면 압전 효과가 55배나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나무를 이용해 일종의 ‘마루’를 만든 연구팀은 마루에 압력을 줬을 때 LED에 불빛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 마루를 혼자 사는 노인이 넘어지는지 파악하는 감지 센서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누르고, 밟고, 쥐어짜면 전기가 나오는 다소 가학적인(?) 에너지 생성 방식인 압전 효과는 생각보다 밝혀진 지 오래된 현상이다. 하지만 그 특수성 덕분에 과학자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되는 현상이다. 앞으로는 또 어떤 분야에 활용될지 기대가 되는 기술이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