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고 고민도 했을 법한 이야기이다. 참 고민스러운 내용이다. 달걀이 먼저라면 그 달걀은 누가 낳았으며, 닭이 먼저라면 그 닭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색채에도 숨겨져 있다. 오늘은 우주부터 스마트폰 화면까지, 빛과 색의 관계를 알아보도록 하자.


빛이 먼저일까, 색이 먼저일까?

▲ 케이시 애플턴(Katy Appleton)의 사진 작품은 뉴턴의 광학 스펙트럼 이미지를 일상에서 찾은 이미지를 프레임에 담은 것이다. (출처: BBC)

영국 왕립사진협회(Royal Photographic Society)가 주최한 올해의 과학 사진가 공모전에서 18세 미만 부문에 수상작으로 발표된 작품은 뉴턴의 광학 스펙트럼을 일상에서 발견한 청소년의 사진 한 장이었다. 어린 소녀의 그림자처럼 보이는 검은 실루엣에 무지개색 스펙트럼이 사선 방향으로 펼쳐진 사진이다. 흑백의 대비와 같은 실루엣의 한 가운데에 도드라진 무지개색 패턴의 컬러는 강한 대비 효과를 보여주면서 시선을 이끈다.

프리즘을 관통한 햇빛이 만든 컬러와 함께 인물의 윤곽이 만든 그림자의 조합은 수상자의 소감처럼 매우 간단한 아이디어일 수 있다. 햇빛과 프리즘만 있다면 누구나 만들어 볼 수 있는 이미지인데 왜 왕립사진협회의 심사위원들은 이 사진에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었을까?

아마도 과학은 늘 우리의 일상에 있다는 이유일 것이다. 다른 작품들은 대체로 지구 온난화의 문제를 제시하는 북극의 모습이나 심해의 유물을 힘들게 촬영한 것들이었다. 그에 비해 이 사진은 일 년 내내 우리 곁에 보이는 빛과 색에 대한 발견을 보여준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잊고 지내던 색채의 원리에 관한 증명이다.

삼각형의 프리즘을 통과한 햇빛이 무지개색 패턴을 만든다는 사실은 뉴턴 이전에도 널리 알려진 상식이었다. 다만 이 색상 패턴이 햇빛 자체의 구성 요소인지 아니면 프리즘의 독특한 기능 때문인지는 알쏭달쏭했다. 이 궁금증을 뉴턴은 구멍으로 들어온 햇빛에 프리즘 두개를 연달아 사용해 색상의 분리와 혼합을 한 번에 증명했다.

뉴턴은 ‘우주의 모든 색은 빛으로 만들어졌다’고 선언하면서도 ‘광선은 색에 물들지 않는다. 다만 색감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을 뿐이다’고 주장했다. 빛은 물리적인 개념이고 색은 심리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단지 빛에는 색을 유발하는 특성만 있을 뿐이다.

뉴턴의 실험처럼 햇빛을 색상 스펙트럼으로 분리하고 다시 흩어졌던 색을 모아서 원래의 투명한 빛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빛이 먼저인지 아니면 색이 먼저인지 질문을 남기고 있다.


빛의 물리학, 빛은 파장이다

물리학에서 빛은 전자기파(electromagnetic radiation)로 정의한다. 색채는 전자기파 중에서도 일부영역인 가시광선의 파장에서 인지된다.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하는 인간의 관점에서 빛과 색의 관계를 따진다면 우물에 갇힌 개구리 신세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시각으로 인식되는 전자기파의 파장은 사실 뉴턴이 스펙트럼이라고 명명한 광학 영역의 절반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햇빛 스펙트럼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은 빨간색 파장 바깥의 적외선이다.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시광선의 힘이 더 세고 풍부하기 때문에 우리는 빛을 무지개색 스펙트럼으로 여기는 것이다.

▲ 전자기파의 파장을 10km 단위부터 원자 단위까지 구분해서 설명하는 이미지를 보면 인간의 시(視)지각으로 인지하는 가시광선의 폭은 아주 좁은 일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자기파 중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빛’이라 부르는 것을 파장 영역에 따라 구분해보면, 가장 좁은 파장을 가진 감마선과 X선부터 시작해서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 마이크로파, 전파 등의 순서로 파장이 증가한다.

방사선의 일종인 감마선은 파장의 간격이 10 피코미터(pm), 즉 1억분의 1밀리미터(mm)로 가장 좁다. 더 친숙한 방사선인 X선 또한 1피코미터(pm)~10나노미터(nm) 범위의 좁은 파장을 가진다. 자외선은 1~400nm, 가시광선은 400~800nm, 빨간색 바깥의 적외선은 800nm~1mm 정도이다. 400nm 정도의 좁은 범위에 우리가 알고 있는 무지개색 스펙트럼이 보라색부터 빨간색까지 모여 있다. 그 흔한 X선, 자외선, 적외선 등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적외선은 이미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카메라 센서에는 적외선 차단 필터를 붙여서 쓰기도 한다. X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속을 들여다보는 용도로, 자외선은 선탠이나 살균기 원리로 일상에서 이용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빛은 저마다 알맞은 쓰임새가 있다.

이처럼 풍부한 ‘빛’은 어디서 오는가?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해가 땅에 비추는 빛은 어디서 올까? 햇빛은 은하계의 무수한 별들 중에서 바깥 편에 위치한 태양에서 지구로 온다. 태양에서 오는 전자기파 중 대부분은 지구의 대기에서 걸러진다. 수십 미터 파장의 전파는 전리층에서 반사되고, 피부암을 일으키는 자외선은 오존층에서 흡수된다. 방사능 오염의 위험이 있는 감마선과 X선도 대부분 대기중의 질소와 산소에 흡수된다. 대기권 바깥을 둘러싼 지구의 전자기장은 우주로부터 오는 수많은 위험 요소를 걸러주고 막아주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 이런 과정을 뚫고 지표에 도달하는 햇빛은 지구 생명체에게 자양분이 되어 주면서도, 투명한 대기와 물을 만나면 마술처럼 산란과 굴절 현상을 드러낸다. 전자기파인 빛이 진동하기 때문이다.

▲표면 반사광을 제거하는 ‘편광 필터’는 디스플레이나 선글라스 등의 빛 반사를 억제하기 위해 사용된다.

빛의 진행 방향을 Z축이라 설정하면, 자기장은 Y축 방향으로, 전기장은 X축 방향으로 서로 직각의 상태로 진동하며 나아간다. 이 진동의 특성을 조종하여 카메라 렌즈나 디스플레이, 선글라스 등에 붙이는 편광필터(polarizing filter)를 만들어 쓰기도 한다. 편광필터를 붙이면 투명의 난반사가 사라지고 대상이 선명하게 보인다.


파장이면서 동시에 입자인 빛의 이중성

빛은 전자기파이므로 파장의 원리가 발생시키는 다양한 현상들에 관해서는 과학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빛을 내는데 우리의 몸도 전자기파를 발생시킨다. 외모는 시각으로 인지되기 때문에 금방 누구이며 어떻게 생겼다는 것을 알아보게 되지만, 보이지 않는 빛을 내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채기 힘들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부쩍 늘어난 체온 측정용 적외선 카메라의 화면을 들여다볼 때, 우리는 스스로 적외선을 내뿜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이처럼 인간의 시각 바깥에 위치한 수많은 빛은 시지각 안의 색채로 번역되어야만 비로소 사실로 증명될 수 있다. 적외선뿐만 아니라 외계의 블랙홀도, 먼 거리의 전파도 눈에 보이는 색채로 그려져야만 이해도 하고 분석도 할 수 있다.

뉴턴은 빛의 스펙트럼을 음계처럼 일곱가지 색으로 분류했지만, 빛이 파동이라는 사실에는 수긍하지 않았다. 그 당시 호이겐스(Huygens)와 로보트 훅(Robert Hooke)이 굴절과 회절현상 등을 근거로 주장했던 빛의 파동설은 입자설과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뉴턴이 입자설의 편에 서면서 판세가 완전히 기울고 말았다.

1807년 토머스 영(Thomas Young)이 빛의 간섭을 실험하면서 빛이 파장이라는 주장을 관철한 덕분에 다시 파동설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파동의 매개체를 가상의 물질인 에테르(ether)로 설정해야만 되는 함정에 빠져버렸다.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제임스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이 전자기파의 통합적 증명에 성공하면서 빛은 곧 전자기파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빛은 파동의 성질도 가지면서 입자의 특성도 보여주는 데에서 긴 논쟁이 이어졌다. 이 논쟁을 더 확실히 해결한 것은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광양자설(光量子說)이었다. 이후 양자역학의 정립과 함께 방사선 입자가속기 기술의 발전에 따라 빛은 일반적으로 파동의 성격을 갖지만, 원자 단위의 에너지 충돌과 같은 미시적인 부분에서는 빛의 입자, 즉 광자(photon)라는 것이 입자의 성질을 보여준다는 증명으로 오랜 논쟁은 정리되었다.


빛으로 표현하는 다채로운 컬러의 세상

태양으로부터 초속 30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8분 20초만에 날아와서 지구로 들어온 햇빛은 우리에게 다채로운 컬러의 세상을 만들어준다. 햇빛 덕분에 우리는 가시광선의 스펙트럼에 들어있는 모든 색채를 감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빛이 없다면 색도 없을까? 그렇다. 색은 빛으로 생성된다. 우리가 인지하는 세상의 색은 대상과 사물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색이 아니다. 그 사물이 반사하는 색을 우리의 눈이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흡수하지 않고 밀어내는 빛의 색상을 우리는 사물의 고유색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빨간 사과에는 빨간색이 없다. 엄밀히 따져보자면, 먼저 빨간 사과가 난반사시킨 긴 파장의 광자가 우리 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망막의 적추체(赤錐體) 내부의 L-포톱신(photopsin)에 흡수되면 시신경을 타고 뇌의 시각 피질에 전달되어 빨간색으로 인지하는 과정을 거친다.

▲ 인간의 망막에 비친 빛의 색상을 감지하는 원추체의 색상별 영역을 보면 파란색을 감지하는 청추체의 그래프가 다른 두 개보다 조금 더 떨어져 있고 중첩되는 영역이 적다. 이 때문에 빨강-녹색 계열의 색을 구분할 때와 파란색 계열을 구분할 때 사람의 시신경에서는 서로 다른 계산법을 사용한다.

색을 감지하는 원추체(圓錐體)는 빨간색 광자를 흡수하는 적추체(L), 녹색의 녹추체(M), 파란 색의 청추제(S)로 구성된다. 망막에서 다른 두 요소보다 청추체의 수량이 적고 안구의 중심와 부분에만 모여 있다. 이 세 가지의 원추체에 전달되는 신호의 강도에 따라 색을 구분하고 간상체의 명암 정보를 더해서 다채로운 실제 색상을 인식하게 된다. 컬러 디스플레이에서 픽셀이 적녹청(RGB)으로 구성된 원리도 이와 같이 우리 눈의 색채 감지 세포의 구조에 기반을 둔 것이다.

그래서 빛으로 색을 표현하는 디스플레이 기술은 심오한 우주의 원리를 우리의 눈 앞에 구현하는 일과 같다. 8분 전에 태양이 내보낸 빛의 스펙트럼 속 광자들이 눈으로 들어와 시각을 형성하듯이, 디스플레이 장치가 내뿜는 빛의 변화가 화면 속의 그림을 만들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인간의 시각은 수천만 가지 색을 구분할 수 있다. 색채를 색상(hue), 채도(saturation), 명도(brightness)의 조합으로 본다면 순수한 색상의 종류는 많지 않다. 400나노미터의 가시광선 영역에서 1나노미터 단위로 색상을 쪼개도 400개뿐이다. 시지각에서 예민하지 않은 녹색과 보라색, 빨간색의 가장자리 영역을 뺄셈하면 최대 250개 정도의 색상을 구분할 수 있다. 거기에 채도와 명도의 변화를 더하면 수천만가지의 색채가 시지각의 영역에 들어온다.

8비트 디스플레이 장치에서는 빨강, 녹색, 파랑의 색상 별 256단계를 표시할 수 있는데 그것을 서로 조합한 색은 약 1,670만가지다. 그 정도로도 충분한데 우리가 명확히 구분하지는 못해도 미약하게 느낄 수 있는 색을 더 넓게 구현하기 위해서 인류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8비트보다 훨씬 넓은 10비트 색체계를 사용하는 디지털 카메라와 디스플레이 기술도 실현되었다.

최근에는 백라이트와 필터를 거쳐서 화면을 보여주는 LCD 방식의 디스플레이를 넘어서 스스로 빛을 내는 OLED 디스플레이도 대중화되었다. 햇빛 아래서 맨눈으로 직접 살펴보는 자연의 다채로움처럼 이제 디스플레이 장치에서도 고해상도의 이미지를 광대역의 색체계로 바라보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양자역학 응용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언젠가는 광자 자체를 자유롭게 제어해서 실물처럼 보여주는 디스플레이도 나타나지 않을까?  

▲ 삼성 QD 디스플레이 기술은 단순히 광원의 수와 광량을 증가시키는 방식의 차원을 넘어, 색순도를 높이는 발광 방식을 활용해 시지각 자체를 변화시키는 혁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진공의 우주 공간을 날아온 태양광이 우리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었듯이, 손 바닥 안 스마트폰 화면에서도 우주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바로 눈 앞에 다가왔다.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 눈에 보이게 하는 기술은 그 자체로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