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의 생활을 바꿔놓았다. 대면보다는 비대면 생활을 강요당하게 되며 재래시장과 식당과 같은 소상공인들은 큰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인터넷을 이용한 배달 사업은 평소보다 몇 배로 초고속 성장했다. 직장인들은 일찍 출근해서 같은 사무실에서 오밀조밀 근무하던 형태가 10년 뒤에나 올까 말까 했던 재택근무로 바뀌었고, 학생도 교실에서 받던 수업이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미래형 교육환경으로 급속하게 변했다. 이처럼 코로나는 갑자기 나타나 우리의 일상을 속속들이 바꿔놓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렇게 바뀐 여러 상황은 코로나가 진정되더라도 예전의 형태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즉, 각 분야의 근무환경과 생활 그리고 산업은 빠르게 재편될 것으로 내다봤다.


작은 변화에 의한 급격한 상태 전환을 설명하다

우리는 코로나 사태와 같은 급격한 변화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예를 들어 2004년 인도네시아는 쓰나미로 약 15만 명의 인명 희생과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었다. 이런 큰 자연재해는 역사적으로 인간과 자연에 큰 영향을 끼쳤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미국의 고고학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키즈는 세계 각국의 사료를 조사해서 쓴 <대(大)재해(Catastrophe, 2000년)>에서 서기 535에서 536년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대기가 혼탁해지면서 태양을 가려 큰 기근과 홍수가 나고 전염병이 창궐해 구시대가 몰락하고 새 문명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1815년에는 인도네시아 숨바와 섬의 탐보라 화산 폭발로 수십만 명이 숨졌다. 대기를 뒤덮은 150만km³의 화산재와 먼지는 지구의 기온을 낮췄고, 이로 인해 이듬해인 1816년은 유럽인들에게 ‘여름이 없었던 해’로 기억됐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흉작이 이어졌다. 1845년 여름 아일랜드에서는 3주 동안 내린 큰비와 습한 날씨 때문에 감자 페스트가 퍼졌고, 이 비는 이듬해 봄까지 계속됐다. 결국 주식인 감자 농사를 망친 수많은 아일랜드 인들이 굶어 죽었고, 200만 명 이상이 이후 10년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결국 오늘날 많은 수의 미국의 조상은 아일랜드 출신이라고 한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대규모 자연재해는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실제 예이다.

이런 상황은 비단 큰 사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2020년을 ‘깡’ 열풍으로 몰아넣었던 가수 비의 노래다. 이 노래는 2017년 12월에 처음 발매되었는데, 당시 모든 음원 차트에서 100위 안에도 들지 못한 비인기곡이었다

게다가 깡은 개연성 없는 곡의 진행, 세련미 없이 자기애만 가득한 가사, 비의 매력을 잘 살리지 못한 안무 등으로 음악평론가들의 혹평을 받았다. 그런데 이런 악평이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소재를 일컫는 ‘밈’으로 떠올랐고, 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웃긴 댓글들이 뮤직비디오에 연이어 달리면서 깡이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2020년 5월, 깡은 실시간 음원 차트에 처음 진입했고, 유명인들의 깡 챌린지 영상이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며 가수 비는 깡으로 유명 제과업계의 과자 CF까지 찍었다. 묻혔던 좋은 노래가 종종 다시 유행하는 일반적인 ‘역주행’과는 달리 깡은 여전히 음악적으로 평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역주행했다는 특이한 이력을 갖게 되었다.

코로나의 발생, 화산의 폭발,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발생, 노래 깡의 인기처럼 세상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급격한 변화가 종종 일어난다. 이런 급격한 변화는 대부분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작은 변화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수학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고 마침내 작은 변화에 의한 급격한 상태 전환을 설명하는 ‘파국이론(catastrophe)’을 세우게 되었다.


마당발 위상수학

파국이론에 대하여 간단히 알아보기 위해서 우선 파국이론이 속해 있는 수학의 한 분야인 위상수학(位相數學, topology)에 대하여 간단히 알아보겠다. 위상수학을 간단히 말하자면 공간 속의 점, 선, 면 그리고 위치 등에 관하여 양이나 크기와는 상관없이 형상이나 위치관계를 나타내는 수학의 한 분야이다.

이를테면 진흙 덩어리를 가지고 둥근 공을 만들었다가 공 모양을 변형하여 긴 막대기나 손잡이가 없는 컵을 만들 수 있다. 이때, 모양은 공에서 막대기나 컵으로 바뀌었지만 진흙 덩어리가 모래로 바뀌었다든지 서로 떨어졌다든지 구멍이 뚫렸다든지 하는 변형은 없다. 이럴 경우 우리는 둥근 공과 막대기 그리고 손잡이 없는 컵은 위상적으로 동형이라고 한다. 그러나 둥근 공과 구멍 뚫린 도넛은 위상적으로 동형이 아니다. 구멍 뚫린 도넛은 구멍 뚫린 손잡이가 달린 컵과 위상적으로 동형이다. 즉, 구멍이 없는 둥근 공 모양의 진흙 덩어리를 구멍을 뚫지 않고 도넛 모양을 만들 수 없다. 반대로 구멍 뚫린 도넛의 구멍을 유지한 채 둥근 공으로 만들 수 없다.

위상수학은 여러 면에서 기호논리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수학의 거의 모든 분야는 물론 예전에는 수학적 방법으로 처리할 수 없다고 여겼던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기계장치, 지도, 배전망, 복잡한 기능을 계획하고 제어하는 조직 설계에 영향을 미친다.


사랑에 관한 파국이론

1950년대 말쯤부터 영국의 수학자 지이만(E. C. Zeeman)이 처음으로 위상수학을 수학 이외의 다른 과학에 응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뇌의 위상적 모델을 만들어 여러 가지 현상을 해석함으로써 수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에 자극을 받은 수학자 톰(R. Thom)은 수학의 이론을 생물학과 물리학 더 나아가 사회과학에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고, 1973년 말, <구조 안정성과 형태 형성 이론>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톰은 이 책에서 처음으로 갑작스러운 큰 변화를 파국이라고 하며, 파국을 어떻게 수학적으로 파악하는가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였다.

그런데 파국에 관한 톰의 생각은 난해하고 철학적이었기 때문에 지이만은 톰의 이론을 쉽고 응용하기 편리하도록 풀이하였다. 지이만은 파국이론을 전개하는데 ‘적에 대한 개의 행동’을 예로 들었는데, 우리는 이를 사랑으로 바꾸어 간단히 알아보자.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든 남녀 간의 사랑이든 또는 친구 사이의 사랑이든, 사랑은 우리를 밝고 좋은 세상으로 이끌어 가는 힘이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서로를 질긴 끈으로 꽁꽁 매 놓은 매듭과도 같이 한 번 매 놓으면 풀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어려운 사랑을 수식으로 간단히 푼 사람이 있다. 그는 이 시대 최고의 천재로 알려진 아인슈타인(Einstein, Albert, 1879-1955)이다.

어느 날 물리학 강의 도중 잠깐 숨을 돌리는 아인슈타인에게 한 학생이 물었다. “박사님은 모든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상대성 원리도 발견하시고 수식화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사랑도 방정식으로 표현하실 수 있습니까?” 잠시 생각하던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은 사랑 방정식을 만들어 냈다.

▲ 아이슈타인의 ‘사랑 방정식’을 나타낸 그림. 사랑이란 마지못해 떠나며 못내 아쉬워 뒤돌아보는 마음과 보내는 안타까움이 드러난 모습을 표현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가지 않으면 안 될 길을 마지못해 떠나가며, 못내 아쉬워 뒤돌아보는 그 마음! 갈 수 없는 길인데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간절한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사랑이다.” 위 그림은 아인슈타인의 사랑에 관한 재치 있는 수식은 사랑의 감성적인 면을 나타낸 것이다.

그럼 아인슈타인이 방정식으로 표현한 사랑으로 파국이론을 설명해 보자.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젊은 남녀가 있다. 그들의 사랑을 수치적인 양으로 나타내기는 힘들지만, 둘은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방에게 더욱 깊은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었다. 이들은 서로를 사랑하는 동안 몇 차례 싸움도 했다. 아름다운 사랑을 만들어가던 연인은 어느 날 하찮은 일로 심하게 싸우게 되었다. 그래서 화가 난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던 마음이 시들게 되었다. 하지만 예전의 사랑을 되찾고 싶어 하는 남자는 어떤 방법으로 여자에게 화해를 청할까 생각하다가 편지를 쓰기로 했다. 그래서 남자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짧지만 진심이 가득 담긴 화해의 편지를 정성껏 써서 보냈다. 편지를 읽어본 여자는 남자의 진심에 너무 감동한 나머지 남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벅차올랐다. 결국 그들의 사랑은 다시 뜨거워졌고 예전보다 더욱더 사랑이 깊어지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수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그래프로 나타내어 보자. 그림의 수평축은 둘이 만남을 유지하는 시간이고 수직축은 사랑의 양이라고 하자.

▲ 왼쪽의 그래프는 불연속적인 현상을 나타낸 것이고, 오른쪽의 그래프는 이들을 포함하는 곡면이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이 그림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꽃을 선물할 때까지 연속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꽃을 선물한 다음은 사랑의 감정이 위로 ‘점프’했다. 또 약속을 어긴 이후에 연속적으로 변하던 곡선은 말다툼이 있은 다음에 밑으로 ‘점프’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남자의 편지를 받고 둘이 화해를 한 이후에는 기존에 있던 양보다 훨씬 많이 위로 점프했다. 이런 복잡한 불연속을 어떤 한 곡면 위에 모두 나타낼 수 있고, 그 곡면의 성질로부터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파국이론이다.

이처럼 파국이론은 예전의 연속적인 현상만을 다루었던 수학에 불연속 현상을 도입하는 획기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 어떤 현상에 대한 다양한 표현 방법의 모델이 수학자로부터 자연과학자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자에게도 제공되었다. 지이만은 이런 기법을 이용하여 국방문제에서부터 나라 사이의 외교관계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응용의 보기를 들어 파국이론을 설명했다. 처음에 파국이론에 대한 이런 설명 중에서 사회과학과 관련된 어떤 것은 이야깃거리로만 여겨졌었지만, 지금은 자연과학과 함께 여러 곳에서는 실제로 파국이론이 응용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 사태를 맞은 현시점의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하는 수학이론 중 하나가 되었다.

애정에 관한 상황부터 사회에 불연속적인 다양한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수학. 이 학문이야말로 팔방미인이 아닌가 싶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모두 수학을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파국이론과 같은 재미있는 수학적 이론을 통해 오늘 또 수학에 한걸음 더 가까이 접근해 보길 바란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