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체력과 지구력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강철맨 존 헨리(John Henry). 그는 강철 망치로 바위에 구멍을 뚫던 힘센 철길 노동자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후반에 기계식 스팀 망치가 등장하자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걱정한 그는 스팀 망치와 터널을 먼저 뚫어 내는 대결을 통해 인간이 기계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했다. 존 헨리는 이 대결에서 기계보다 먼저 터널을 뚫으며 승리를 거두지만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과로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화는 일자리를 크게 변화시켰고 근육의 힘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던 시대는 사라졌다. 1970년대 이후 컴퓨터 자동화가 확산하면서 공장 기계들은 연결되고 자동화되었다. 공장 노동자들은 운전실 내에서 모니터를 보면서 키보드와 마우스로 작업을 조종하는 화이트칼라로 변모했다. 몸보다 머리를 쓰는 노동자 시대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알파고(AlphaGo)로 대표되는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이제는 이마저도 저물고 있다. 과연 지식노동자들은 AI에 모든 일자리를 내줘야만 하며, 공존하는 길은 없는 것인가?

인간과 기계의 협동

전통적인 자동차 조립공장에선 로봇과 인간은 서로 분리되어 다른 일을 맡았다. 로봇은 위험하고 빠른 일처리를 위한 고속작업을 맡고 인간은 섬세하고 복잡한 조립작업을 맡았다. 그러나 최근엔 로봇과 작업자가 유연하게 함께 작업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로봇 주변에 민감한 센서들을 설치하고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주변 상황변화를 인지하여 반응하도록 한다. 그 후 인간이 로봇과 함께 섬세한 작업을 해내고 있다.

예를 들면 독일 BMW 딩골핑(Dingolfing)공장의 트랜스미션조립 작업자는 쿠가(Kuka) 로봇팔과 협업을 한다. 작업자가 기어 케이싱 내부에 베어링을 끼워 놓으면 로봇 팔은 5.5 킬로그램 무게의 기어를 케이싱 안에 놓는다. 이를 기다렸다 작업자는 케이싱 뚜껑을 닫아주면 조립이 완성된다. 작업자와 로봇들이 한 팀이 되어 조립능률을 높인 사례다.

▲ 트랜스미션 조립 작업자와 쿠카 로봇의 협업 (출처 : KUKA)

한편 포드자동차는 엑소베스트(EksoVest)라는 외골격 장치를 작업자가 착용하는 실험을 거쳤다. 통상 오버헤드 조립라인 작업자는 팔을 하루에 최대 4,600회 정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데 목과 어깨 근육에 부상을 입기 쉽다. 그런데 엑소베스트를 착용하면 팔과 어깨 근육의 피로를 줄여 준다고 한다.

▲ 포드자동차, 엑소베스트를 착용하고 조립하는 작업자 (출처 : EksoWorks)

그러나 조끼가격(6천 달러) 때문에 적극적인 도입은 망설이고 있다. 로봇이 인간의 작업을 모두 대체하기엔 아직은 로봇의 경제성이 문제가 되고 또 세심한 인간의 역할을 능가하지 못하는 영역도 많이 남아있다.

AI나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모두 대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에서 벗어나야 한다. 알파고 같은 강력한 AI라도 모든 비즈니스 과정을 전담할 수는 없다. 자율자동차가 확산되면 언젠가 택시와 트럭 운전자가 급격하게 줄어들 수는 있다. 물론 그런 직종도 있지만, AI 기술의 역할은 대부분 업무에서 인간의 잠재력을 보강하거나 증강하는 목적으로 사용될 것이다.

반복적인 업무, 엄청난 데이터 처리, 단순한 사례가 많은 업무는 AI의 활용도가 높다. 반면에 모호한 정보처리, 복잡한 사례들의 판단, 변덕스러운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는 일은 인간이 맡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같은 일이라도 인간과 기계가 협력하면 일 처리를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다. 비즈니스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시스템을 설계할 때 인간과 인공지능이 합심해서 일 처리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난 수십 년간 비즈니스는 혁신을 거듭해 왔다. 그 과정은 세 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표준화 단계이다. 헨리포드가 자동차 조립공장을 세웠을 때 핵심 기술은 단위 공정의 표준화였다. 프로세스를 측정하고 최적 조건을 표준화해서 작업효율을 높였다.

두 번째는 자동화 단계이다. 7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는 동안 컴퓨터가 공장에 도입되고 모든 처리작업의 순서를 컴퓨터에 입력해서 관리해 줌으로써 공정관리를 컴퓨터로 관제할 수 있게 됐다. 단위공정을 자동화하고 연결시켜 작업효율도 높였다.

세 번째로 지능화 단계에 들어섰다. 순간마다 주어진 변화를 컴퓨터가 감지하고 자율 적응하며 사용자의 취향 또는 선호도에 따라서 시스템을 지능적으로 조종하는 방식이다.

 

AI와 인간의 역할

AI 알고리즘이 삽입된 내비게이션은 GPS 데이터로 위치변화를 인식하고 목적지까지의 경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교통변화를 축적된(날씨, 요일, 시간대 별) 데이터로 학습한다. 또 실시간 접속자들의 차량위치와 주행 속도를 수집하여 목적지까지의 경로를 시간과 구간 단위로 세분하여 예측해 준다.

실시간 교통환경 변화를 자동 반영하므로 운전자는 추천된 경로만 따르더라도 최적 조건으로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물론 운전자가 내비게이션의 추천 방식을 임의로 바꿔줄 수도 있다. 일종의 인간과 기계의 협업 상태이다.

자율주행 자동차라면 실시간 교통정보를 활용해서 차량이 스스로 경로를 자율적으로 바꾸게 된다. 이 경우도 인간이 자율주행 방식이나 목적지를 지정해 주므로 인간과 기계의 진화된 공생(symbiotic) 협력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AI는 가장 최적화된 기계와 가장 지적인 인간 사이의 틈을 메워주는 역할을 한다. 즉, AI는 독립적으로 일처리 하는 것보다 서로 연결하여 효율적인 성과를 거두게 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인 셈이다.

인간의 강점은 일처리를 선도하고, 공감하고, 새롭게 일을 발굴하고, 가치를 판단하는 일을 맡을 때 드러난다. 반면에 기계의 강점은 일처리 속도, 반복 업무의 정확성, 데이터에 기초한 예측과 적응업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이 기계의 강점을 활용하려면 AI를 연결고리로 삼아야 한다. AI가 기계와의 연결고리로서 작동되려면 기계가 업무를 완성할 수 있도록 인간의 아이디어로 기계의 부족한 점을 보강해 줘야 한다.

AI의 역할은 인간이 초월적 힘을 발휘하도록 정보를 보강해 주는 일을 맡으면 된다. AI를 훈련시키고, 이유를 설명해주고, 초지일관 추구해야 할 목표를 정해주는 일은 인간이 맡는다. 반면에 인간의 업무 집중도를 높여 주고, 역량을 증강해주고, 업무 관련 상황변화를 체감하게 하는 일은 AI가 맡게 한다.

▲ 인간과 기계의 공생관계 모식도

인간과 기계가 협업할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AI가 업무의 본질을 잘 파악할 수 있도록 설계해 줘야 한다. 단순히 기계의 자동화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되고 기계와 인간이 협업을 통해서 새롭게 거둘 수 있는 더 큰 가치를 구상하고 시스템에 이를 삽입시켜야 한다. 예를 들면 고정된 자동화 생산라인이라도 작업자가 AI를 활용하여 기계가 협업하면 기존 방법으로는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유연하게 극복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더욱이 AI가 작업환경변화를 지속해서 학습하게 되면 인간이 설계해준 조건보다 더 효율적인 작업조건을 찾아낼 수 있어서 협업의 성과가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 같은 인간과 기계의 연결고리가 성공을 거두려면 다양한 경우를 대변할 충분한 데이터가 학습되어야 하며, 인간의 강력한 의지가 관철될 때까지 AI의 알고리즘을 지속해서 개선해 줘야 한다. 지난 수 세기 동안 공장자동화는 표준화된 기계의 관점에서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인간의 역할이 줄어들었지만, 자율적응을 위한 기계의 지능화 과정에선 인간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인간이 조정하는 역할이 핵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생활 속에 스며든 AI

AI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실제 사례들은 특정 분야를 명시할 필요도 없이 다양하다. 예전에는 음악을 작곡하고 악기를 연주하려면 음악이론을 학습하고, 악기를 다루는 훈련을 적어도 수년 동안 단련해야만 했다. 하지만 AI 작곡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면 교향곡을 작곡하고 단 한대의 컴퓨터만으로도 챔버 오케스트라 전체를 연주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AI 작곡 소프트웨어 아이바(Aiva)를 이용하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느낌의 교향곡을 직접 작곡해서 연주해 보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 AI 작곡 소프트웨터 아이바(Aiva) (출처 : Aiva)

개러지밴드(Garage Band), 뮤직메모스(Music Memos), 험(Hum), 험온(Hum On), LMMS, 뮤즈스코어(MuseScore) 등은 스마트폰에서 간단히 악보를 작성하고 연주가 가능한 앱들이다.

AI가 인간의 잠재력을 크게 확장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금융부문에서의 투자자문을 담당하는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를 빼놓을 수 없다. AI는 뉴스사이트, 블로그, 소셜미디어 등 금융정보와 관련이 깊은 구조화되지 않는 데이터들을 분석하여 인간의 힘만으론 식별해 낼 수 없던 투자 흐름을 패턴화해준다. 모든 금융차트의 변화를 인식해서 인간의 눈만으론 감지할 수 없는 차트 변화를 자동으로 판단해 주므로 많은 시간을 절약하고 더 많은 거래 기회를 포착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정보는 직접 투자에 참여하는 투자자의 거래 의사결정의 정확성을 높여준다. 로보어드바이저는 투자자의 행동 패턴과 재무목표를 함께 고려하여 적절한 투자방안을 유도해 준다. 하지만 AI가 직접 거래를 주도하도록 내팽개쳐 두지는 않는다. 아무리 우수한 성능의 로보어드바이저라도 훌륭한 투자자의 판단이 결합되지 않으면 엄청난 금융손실을 초래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최종적인 투자 결정은 전문 투자자인 인간이 한다.

아마존, 구글, 아이비엠,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들은 모두 AI 서비스 사업을 하고 있다. 기업별로 방식은 약간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사용자가 직접 코딩하지 않아도 클라우드 접속만으로 사용자의 작업환경에 AI 서비스를 맞춰주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이미지 및 음성인식 기능을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 자체 훈련된 AI 도구들도 제공해 준다. 이를 잘 활용하면 어떤 비즈니스에서도 지능화된 플랫폼이나 서비스를 설계해 줄 수 있다.

기업들의 AI 서비스는 이미 소비자들의 일상생활 속에 스며들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스마트폰 앱들은 대부분 AI 기능을 활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기업이 AI를 비즈니스에 적용하지 못하거나, 실생활에서 기업들이 제공하는 AI 서비스를 활용하지 못한다면, 이는 맨몸으로 AI 시대를 헤쳐나갈 또 다른 강철맨 존 헨리의 모습으로 비칠 것이다. 반면에 발 빠르게 AI 서비스를 도입한 기업이나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을 활용하는 소비자는 외골격 로봇을 입어 능력을 배가하는 아이언맨이 되어 AI 시대를 풍미할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인간과 인공지능의 협력 여부에 따른 변화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