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디스플레이 기기에 대한 칼럼을 의뢰받았다면 SF 영화에 나오는 미래 세계의 환상적인 디스플레이 기기에 대한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SF의 가제트는 대부분 허구의 기계이다. 이 허구의 기계는 그 세계가 존재하는 (허구의) 기술 사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고 작동 원리도 밝혀지지 않았으며 대부분 그 시대의 쓰임새보다 그 기계를 상상한 사람들의 당시 욕망을 반영한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실제 기계와 상상 속 미래 기계의 차이를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과거 할리우드 사람들이 상상한 손목시계 전화기나 영상통화가 가능한 공중전화기가 존재하지 않는 건, 과거의 사람들이 앞으로 다가올 기술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욕구를 제대로 계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우리는 미래를 만들려 노력할 수 있을 뿐, 정확한 미래를 예측하지는 못한다.

결국 앞으로의 미래를 상상하는 최근 영화 속 테크놀로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좀 공허하다. 차라리 과거의 영화들이 그린 지나간 미래를 보면서 그 상상력의 한계와 엉뚱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낫다.

 

테크놀로지가 바꿔 놓은 오늘의 풍경, 영화 [다빈치 코드]

물론 그보다 더 의미가 있는 건 현대의 관점에서 현대의 테크놀로지와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칼럼에서는 영화에 대해 다루고 있으니 지금의 테크놀로지가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순서일 거 같다.

▲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한 톰행크스, 오드리 토투 주연의 영화 [다빈치 코드]의 한 장면(이미지 출처: www.imdb.com)

사실 지금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는 테크놀로지의 공습 때문에 당황해하고 있는 중이다. 바로 모바일 기기들이다. 이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보려면 [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 2006) 영화판을 보면 된다. 최근 영화가 아니냐고? 맞다. 하지만 톰 행크스(Tom Hanks)와 오드리 토투(Audrey Tautou)가 파리 길거리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이 가능한 모바일 기기를 행인에게 빌리는 부분을 보라. 당시엔 그게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과시였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인터넷이 가능한 모바일 기기를 갖고 있다!

생각해보라. 영화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그건 다양한 배경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다양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이 재료의 다양성은 심각하게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옛날 영화에서 사람들이 책과 먼지로 가득찬 낡은 도서관 사이를 방황하고, 연인과 함께 고급 식당에서 로맨틱한 저녁을 즐기고, 고립된 저택에서 가면 쓴 살인마에게 쫓기며 도와줄 사람을 찾고, 10여년 전 마지막으로 만난 연인을 찾아 낯선 나라를 여행할 때, 요새 주인공들은 스마트폰을 켠다. 기껏해야 너비가 한뼘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화면이 도서관이 되고 연인의 얼굴이 되고 세계가 되었다. 지금으로서는 스마트폰의 화면만으로 장편 영화를 만드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마, 이미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컴퓨터 화면 모니터에 뜨는 화면이 영화 대부분을 차지하는 호러 영화는 이미 나왔다.

당연히 이 그림은 재미가 없다. 실생활의 편리함이 그림의 재미를 바꾸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도 그렇다. 옛날 작가들은 여기저기 원고지가 쌓인 먼지 투성이의 방에서 깃털 펜에 잉크를 찍어가며 소네트를 쓰거나, 정갈한 방 안에서 도를 닦듯 정자세로 앉아 먹을 갈고 한지를 꺼내고 아까 만든 먹물을 찍은 붓을 휘둘렀다. 모두 장관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부천 현대백화점 4층을 서성대며 스마트폰으로 이 글을 쓴다. 영화쟁이들이 어떻게든 스마트폰이 먹통인 상황을 만들려고 기를 쓰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건 임시방편이고 인간에게 디스플레이 기기는 더 넓은 세계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의 재미를 위해 이 편리함을 포기해야 할까? 천만의 말씀이지.

 

영화 [스타트렉]이 상상한 미래 세상, 우리의 진짜 미래는?

SF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해결책은 디스플레이 기기를 통해 보는 세상과 인간과의 관계를 조금 더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다. 요새 자주 사용되는 것은 VR이다. 하지만 아무리 고글과 글러브가 훌륭하고 그를 통해 접하는 세계가 현실감이 있어도 현실 세계의 매력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가 극장에서 보는 인디아나 존스의 신나는 모험은 지루한 대륙간 횡단 비행이나 공항에서의 기다림, 더러운 화장실과 끔찍한 기후, 더 끔찍한 음식들이 편집된 것이다. VR을 통한 가상세계의 모험은 당연히 그런 것들이 편집된 상태일 텐데, 관객들이 실제 세계의 재미있는 것만 골라낸 그런 가짜 모험을 관객들이 몰입하며 볼 수 있을까? 그렇다고 이 질문의 대답을 얻은 대신 실제 삶의 소중함을 예찬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도 쓸데없는 짓일 것이다. 아직 우린 거기에 대한 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 1984년 작 영화 [최후의 스타화이터]의 포스터(이미지 출처: www.imdb.com)

지금 디스플레이 기기 속 세계에서 가장 환상적인 모험을 하는 사람들은 아마 게이머들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 비디오 게임으로 흥미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길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비디오 게임을 소재로 한 재미있는 영화들은 있지만 대부분 80년대 구닥다리 게임을 소재로 한 엉뚱한 다큐멘터리이거나 - [킹 오브 콩](The King of Kong: A Fistful of Quarters, 2007), 원시적이었던 당시 게임의 스타일을 실제 우주나 가상현실로 옮긴 모험물이다 – 최후의 스타화이터(The Last Starfighter, 1984), 트론(Tron, 1982). 지금의 게이머들이 게임 속에서 펼치는 모험을 그대로 영화로 담는다면 열화된 화면과 의자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람들만 남는다. 이는 관심 있는 사람들에겐 좋은 텔레비전 쇼의 재료일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좋은 영화재료는 아니다. 심지어 체스도 이보다는 더 좋은 영화소재이다.

▲ 2009년에 개봉된 영화 [스타트렉]의 한 장면(이미지 출처: www.imdb.com)

수많은 SF 작가들은 과학으로 무장한 미래인들이 우주선을 타고 먼 미래로 직접 가서 목숨을 건 모험을 하는 [스타트렉]식 미래를 상상했다. 하지만 그런 미래는 점점 과거의 것이 되는 것 같다. 21세기가 되었지만 태양계를 누비는 우주선들은 대부분 로봇들이고 우리는 그들이 보내오는 사진들을 컴퓨터 모니터와 모바일 기기의 액정을 통해 받아보면서 그들의 모험을 따라간다. 아직도 우리는 [스타워즈]와 [스타트렉]의 세계를 사랑하지만 곧 우리의 손이 닿을 수 있는 먼 우주는 화면 너머에서만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