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5일 비트코인의 가격이 3,000달러를 찍었다가 급락했다. 이더리움 또한 400달러까지 올랐다가 300달러까지 떨어졌다. 몇몇은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과 비교하고 어떤 사람들은 네덜란드 튤립 버블과 비교한다.

우리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을 가상화폐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달러가 오른다고 (환트레이더나 자산운용인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달러를 사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달러를 사는 것은 미국에 갈 일이 있을 때이고 마침 환율이 낮다면 재수가 좋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현재 전자화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기적 측면에 관심이 있지 통화로서의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다.

하지만 미래에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가상화폐가 등장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우리의 생활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전자화폐? 가상화폐? 암호화폐?

뉴스를 포함해 여러 글에서 전자화폐, 가상화폐, 암호화폐를 혼용한다. 전자화폐란 전자적으로 교환되는 돈이나 증서를 의미하며 전자송금, 지로, 전자결제, 사이버화폐 등을 포함한다. 어떤 종류건 전자적으로 거래가 되면 전자화폐라 부를 수 있다. 오프라인의 법정화폐를 기반으로 하는 전자화폐는 중앙은행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에 반해 가상화폐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통화가 아닌 그 화폐를 고안해낸 주체가 정한 규칙에 따라 발행되는, 전자적으로 거래되는 화폐를 의미한다. 가상화폐는 전자화폐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으며 암호화폐는 가상화폐 중에서도 암호를 이용해 새로운 화폐를 생성하거나 안전하게 거래를 진행할 수 있도록 고안된 통화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암호화폐는 가상화폐의 한 종류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은 암호화폐이므로 가상화폐와 전자화폐의 범주에 포함된다.

 

통화학파 vs 은행학파, 화폐의 경제학

암호화폐를 논의함에 있어 화폐의 경제학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일단 화폐는 통용되는 지불 수단인 통화로 정의되었다가 화폐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총통화나 총유동성으로 정의되고 있다. 즉 인류 생활과 함께 화폐가 발달하면서 화폐의 기능은 가치척도와 교환 수단에서 지불 수단과 가치저장 기능으로 변화했다. 화폐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매개체의 역할에서 벗어나 경제주체들의 부와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리카르도, 마샬, 프리드만으로 대표되는 통화학파는 화폐공급은 경제활동에 영향을 받지 않고 경제외적 요인(예를 들어 중앙은행)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그와 반대로 은행학파는 화폐를 경제활동의 결과로 간주하고 화폐의 공급은 화폐수요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통화학파의 주장에 따르면 기존 중앙은행이 화폐정책을 이용해 통화량 조절을 통한 완전고용, 물가안정, 국제수지향상, 경제성장촉진 등을 추구한다. 전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암호화폐의 수요가 실제 그런 화폐를 탄생시킨다는 점은 은행학파의 주장과 일맥상통 한다고 볼 수 있다. 약간은 음모론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많은 경제학자들은 2008년 금융위기가 통화학파에 의해 발생하였고 그들의 몰락이라고 보았다. (물론 실제로 몰락하지는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의 반동으로 중앙은행의 통제를 벗어난 비트코인이 관심을 받게 되었고 필자는 이러한 현상이 기존의 중앙은행 통화정책 중심의 경제정책을 주도해온 통화학파에서 은행학파로 패러다임을 움직이고자 하는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명목화폐, 그레샴의 법칙, 그리고 크라우딩 아웃

그렇다면 암호화폐가 정착되면 경제주체들은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명목화폐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인가? 이를 화폐의 크라우딩 아웃, 또는 구축현상이라 말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필자는 한국은행과 작업한 논문을 통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과 같은 암호화폐의 등장이 기존 화폐들의 크라우딩 아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즉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암호화폐가 정착하더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원화를 암호화폐와 함께 사용할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이다.

16세기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고문이었던 토마스 그레샴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라는 유명한 그레샴의 법칙*을 이야기하였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의 화폐로써 역할을 이야기함에 있어 그레샴의 법칙을 들어 암호화폐가 명목화폐를, 또는 명목화폐가 암호화폐를 구축할 것이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필자는 그레샴의 법칙이 암호화폐와 명목화폐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쓰이기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레샴의 법칙이 적용되려면 두 화폐는 경제 내에서 같은 명목가치를 지니지만 다른 내재가치를 가져야 한다. 즉 거래가치는 같은데 실제가치가 달라야 한다는 소리이다. 그러나 암호화폐와 명목화폐는 쓰임이 같기 어렵다. 각각의 화폐를 선호하는 경제주체들이 존재할 것이고 이들은 개인의 선호나 화폐이용의 목적에 따라 암호화폐를 이용할지 명목화폐를 이용할지를 결정할 것이다. 그러므로 두 화폐의 활용이 똑같기는 어렵다. 또한 명목화폐나 암호화폐 모두 내재가치를 지니지 않기 때문에 둘의 실제가치가 다르다고 보기도 어렵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명목화폐와 암호화폐는 동시에 쓰일 확률이 높다. 또한 여러 경제정책들의 효과가 감소하기는 하겠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암호화폐와 명목화폐가 동시에 사용되는 다중화폐제에서 우리의 생활 또한 변화를 겪기는 하겠지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변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