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복을 입은 한 여인이 있습니다. 붓이나 자수가 어울릴 법한 복식이지만 놀랍게도 그녀의 손에는 반쯤 먹은 짜장면 한 그릇이 들려 있습니다. 얌전한 규수와는 거리가 먼 자세로 라면 박스를 식탁 삼아 만찬을 즐기는 여인의 모습은 낯설지만 동시에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내숭 : 인생은 아름다워 / Feign : What a Beautiful Life / 装相 ::人生是美丽的’, 한지 위에 수묵담채, 콜라쥬>

김현정 작가는 한복과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내숭 뒤에 감춰진 인간의 솔직한 감정과 행동을 이야기합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그들을 희화화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계속 그리다 보니 그림 속 주인공이 점점 제 자신처럼 여겨지더라고요. 저 또한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내숭쟁이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를 ‘내숭’ 연작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내숭 : #백설그램 / Feign : #Snow White-gram / 装相 :#白雪公主gram’, 한지 위에 수묵담채, 콜라쥬>

김현정 작가는 이미 국내외에서 주목하는 젊은 아티스트입니다. 얼마 전 미국 잡지 포브스(Forbes) 아시아판은 그녀를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30대 이하 인물 30명’ 중 한 명으로 선정했습니다. 지난 2014년엔 동아일보가 주최한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죠. 한국화가임에도 대중적 인기도 누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진행한 개인전엔 6만7000명 이상이 다녀갔습니다.

김현정 작가가 그려내는 내숭 시리즈는 현대인의 삶과 정서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21세기 풍속화’라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시대상을 드러내는 다양한 사물을 소재로 한 점도 눈에 띕니다.

          <‘내숭 : 새해다짐(feat.내일부터) / Feign : New Year’s resolution(feat. from tomorrow) / 装相 : 新年决心(feat.从明天开始)’, 한지 위에 수묵담채, 콜라쥬>

 

이젠 한국화 그릴 때도 IT 기기가 필요해요”

그녀의 작품은 ‘한국화’라는 장르적 생소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쉽고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직관적인 메시지와 익숙한 일상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제작 과정은 결코 수월하지 않습니다.

“인물을 누드로 먼저 스케치한 후 한복을 입히는 과정을 거칩니다. 저고리는 서걱서걱한 한복의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직접 염색한 한지를 콜라주 방식으로 덧붙여요. 치마는 '네 속이 훤히 보인다' 는 메시지를 드러내기 위해 수묵으로 농담을 주어 반투명하게 표현합니다.”

짧게는 2개월 길게는 6개월의 시간 동안 진행되는 길고 지난한 작업에 있어 모바일, 또는 태블릿 등 IT 기기는 효율성을 높여주고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구상 단계에서 인물의 행동이나 위치 등 사물의 전체적인 구도를 짜기 위해 라인 드로잉을 하는데요. 종이에 직접 그리기도 하지만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면 머릿속에 떠오른 영감을 빠르게 기록할 수 있어 무척 편리합니다.”

연분홍 저고리, 새빨간 하이힐 등 작품 속 다양한 사물들의 색상을 선정하고 배치할 때도 IT 기기가 도움을 줍니다.

 

“내 작품이 화면에서 어떻게 보일지 신경 씁니다”

“화면에 그림을 띄워 놓고 3원색을 중심으로 시너지를 내는 색 조합을 찾습니다. 이 색을 쓰면 주목을 끌 수 있을까? 포인트로 어떤 색을 쓰면 좋을까? 하며 끊임없이 다양한 색깔을 입혀 봅니다"

아티스트들에게 색을 제대로 표현해 줄 수 있는 디스플레이 성능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양한 색을 제한 없이 대입해 볼 수도 있고, 결과물에 대한 느낌을 미리 파악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작품의 색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일하게 구현되는가’는 역시 모든 아티스트들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그녀는 그림 제작 단계뿐만 아니라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단계에서도 화질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요즘은 대부분 작품을 실물 대신 화면으로 먼저 접하게 되다 보니 작품이 화면에서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요. 작게 봐도 잘 나와야 감동을 받고 전시장 방문으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이죠. 특히 한국화의 경우, 먹색을 잘 내기가 무척 힘듭니다. 인쇄할 때도 직접 감리를 보죠.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작업했는데 정작 화면에서 다른 색으로 보이면 굉장히 속상해요. OLED가 탑재된 스마트폰은 풍부한 색표현력도 좋지만, 블랙색 표현이 매우 뛰어나더라고요. 작품의 명암이나 디테일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그림과 친해졌으면 좋겠어요”

김현정 작가는 작품과 관련된 여러 활동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며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기로 유명합니다. 여기에는 ‘누구나 쉽게 미술 작품을 향유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그녀의 꿈이 담겨있습니다.

“한국화라고 하면 다들 어려워합니다. 일단 작가의 의도를 알아야 할 것 같고 그림을 읽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아서죠. 하지만 영화나 음악은 창작자의 의도를 몰라도 그냥 즐기잖아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작품을 설명하고 인터뷰를 통해 팬들과 마주하는 등의 행동이 대중과 미술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대중과 작가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작업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소셜드로잉’을 작품에 접목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중들이 미술 작품을 보다 친근하게 느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은 것이죠.

인터뷰를 마칠 때가 되니 한복을 입고 첨단 IT 기기를 손에 든 모습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발랄하고 참신한 상상력이 많은 이들의 일상에 유쾌함을 전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