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꿈을 꾸면, 과학기술은 그걸 만들어야 하는 의무라도 있는 걸까? 자율주행차, 스마트폰, 홀로그램, 플라잉카를 비롯해 최근 연구되는 많은 기술이 그렇다. 예전에 상상만 했던 물건들이 우리 눈앞에 등장하고 있다. 웨어러블 로봇이나 강화 외골격(Powered exoskeleton)이라 불리는 웨어러블도 그중 하나다. 영화 ‘아이언맨’이나 ‘엣지오브투모로우’, ‘에일리언2’ 등에서 봤던 착용형 로봇이 점점 널리 쓰이고 있다.

▲적은 힘으로 무거운 짐을 옮길 수 있는 웨어러블 (출처: YTN 사이언스)


우주여행에서 출발한 웨어러블

꿈은 영화가 꿨지만, 사실 웨어러블은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발전한 로켓 기술을 바탕으로, 꿈과 희망이 만발했던 1950년대 미국 우주 산업에서 태어났다. 아직 지구 바깥으로 나가본 사람이 한 명도 없던 시절, 다른 행성으로 탐험을 떠날 때 어떤 복장을 갖춰야 좋을지 연구하다 나온 아이디어가 외골격이다. 딱딱한 하드 형태 우주복을 입고 움직일 때를 가정해, 우주복 외부에 외골격을 붙여 근력을 늘리는 방법을 고안했지만, 나중에 우주복이 소프트 형태로 결정되면서 사장됐다.

연구는 멈췄지만, SF 소설 작가들은 이런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받았다. 곧 외골격 우주복을 입은 군인들이 싸우는 SF 소설이 나왔다. 특히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스타십 트루퍼스’가 큰 인기를 얻었다. 이런 인기는 기계를 사용한 인간 증강(Man Amplifier)이라는 개념에 영향을 끼쳤고, GE에서 ‘하디맨(Hardiman)’이라는 머니퓰레이터를 장착한 입는 형태 로봇을 만드는 계기가 된다. 프로젝트 엔지니어였던 랠프 모셔가 작성한 개발 당시 자료를 보면, 이런 입는 로봇을 통해 사람이 기계 같은 힘을 발휘하면서도, 기계보다 똑똑하게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 걸 알 수 있다.

꿈은 쉽지만, 현실은 어렵다. 직접 만들어서 써보면 개발할 때는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드러난다. 시제품이나 콘셉트 모델을 먼저 만들어서, 정말 쓸모있는 지를 검증하는 이유다. 웨어러블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조정하기 어려웠으며, 오히려 착용자를 해칠 수 있었다. 다른 많은 아이디어와 마찬가지로, 개념 검증 단계에서 웨어러블은 탈락했다. 이후 간헐적으로 연구가 이뤄지긴 했지만, 상용화된 제품이 나온 적은 없다. 대신 창작물에 영향을 줘서, 군인이 로봇을 타고 싸우는 작품이나, 조종자가 탑승하는 거대 슈퍼 로봇 등이 나오게 된다.


다르파, 웨어러블을 되살리다

2001년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DARPA)은 잠자고 있던 웨어러블 연구를 되살렸다. 첨단화된 각종 군사 장비로 인해, 군인 개개인이 짊어지는 장비 무게가 증가하고 있어서다. DARPA가 시작한 웨어러블 연구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5년간 5천만 달러에 달하는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실제로 성과를 거둔 회사는 두 군데다. 하나는 항공 방산 기업 레이시온의 자회사 사르코스에서 개발한 XOS 시스템이고, 다른 하나는 록히드 마틴에서 개발한 헐크(Human Universal Load Carrier, HULC)다.

▲록히드 마틴에서 개발한 헐크(Human Universal Load Carrier, HULC)를 착용한 병사들은 장시간 동안 최고 10마일의 속도로 최대 200파운드의 짐을 운반할 수 있다.

당시 웨어러블을 연구하던 팀이 미국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 기업 HAL 같은 곳도 연구를 시작했다. 다만 뚜렷하게 연구 성과를 낸 건 DARPA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회사다. 2010년쯤부터 어느 정도 성과가 나타나자, 다른 나라와 기업도 웨어러블 연구에 뛰어들었다. 몇몇 회사와 연구소는 기존 군사용 연구 성과를 비군사용으로 전환 시키기도 했다. 차세대 사업으로 로봇을 염두에 두고 있던, 삼성전자 같은 회사도 개발을 시작했다. 이로 인해 처음 생각했던 ‘인간 증강’이란 개념에서 벗어난, 차세대 웨어러블의 시대가 열렸다.

차세대 웨어러블은 기존 웨어러블과 어떤 점에서 다를까? 우선 힘을 강하게 만드는 강화형보다, 움직임을 보조하는 지원형 웨어러블이 더 많다. 두 번째로, 가볍고 저렴한 무동력 형이나 소프트 웨어러블이 먼저 보급되고 있다. 실제 세상이 요구하는 기능이 생각과는 달랐던 탓이다. 처음 꿈꿨던 웨어러블은 아이언맨에 더 가까운 존재였지만, 세상이 원하는 웨어러블은 전기 자전거와 마찬가지로, 일할 때 덜 힘들게 해주는 도구 같은 존재다. 좋은 도구가 되기 위해선 쓰기 쉬워야 하고, 입고 착용하고 벗을 때 어렵지 않으며, 가격도 중요하다. 다르게 말하자면, 현재 안정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작업 시 부하를 줄이는 정도이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차세대 웨어러블, 어디에 쓰일까?

아이언맨을 만들기엔 멀었지만, 지난 20년간 웨어러블은 소재를 바꾸고, 스마트 기기나 전기 자동차 산업이 개발한 기술을 흡수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연구가 필요한 핵심 기술은 3가지로 나뉜다. 힘을 전달하는 액추에이터, 신호를 콘트롤하는 제어 인터페이스 그리고 데이터 수집 및 활용이다. 구동부에는 모터와 인공 근육이 주로 쓰인다. 인공 근육은 근육 옷감이나 스프링, 공기압으로 구동하는 패시브 타입이 많이 쓰이지만, 앞으로는 전기로 제어하는 액티브 타입이 도입될 가능성도 있다. 인터페이스 기술은 착용자의 반응을 받아들여 어떻게 반응하는 가의 문제다. 촉각 센서나 공기압, 생체 전기나 음성 등을 인식하는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착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웨어러블을 개선할 방법을 찾는 것이 문제이다. 향후 웨어러블은 개개인에 맞춰 반응하고 성장하는 기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향후 웨어러블의 활용분야는 군사용을 제외하면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산업용과 의료용 그리고 생활용이다. 산업 현장에서는 이미 많이 쓰이고 있는데, 특히 위를 보고 팔을 뻗어서 계속 작업해야 하는 곳에 적합하다고 한다. 현대차에서 사용하는 조끼형 외골격 로봇 벡스(VEX)는 스프링을 이용한 무동력 장치로, 무게가 2.5kg 정도로 가볍고 3kg 정도의 공구는 무게를 느끼지 않고 들 수 있게 도와준다. 건설 현장에서도 수요가 있고, 최근에는 물류 현장 수요가 크게 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물류 수요가 밀려든 탓이다. 파나소닉에서 개발한 아토운 모델Y는 모터로 구동되는 웨어러블이다. 주로 허리를 보조하며, 무게 4.5kg에 8시간까지 사용할 수 있다. 보조력은 10kg. 산업 현장에서 많이 생기는 근골격계질환을 줄일 수 있는 건 덤이다. 최근에는 농업 현장에 웨어러블을 도입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조끼형 웨어러블 VEX, 근로자의 착용 부담을 줄이고 인체 어깨관절을 모사한 구조의 장치를 통해 힘을 보조한다. (출처: 현대자동차그룹)

웨어러블은 의료용으로도 쓰인다. 장애인 선수가 보조 기기를 입고 겨루는 ‘사이배슬론’ 대회가 4년마다 열리고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듯, 장애인 보조나 재활 훈련 분야에서 웨어러블은 이미 성과를 내고 있다. 예를 들어 엔젤로보틱스에서 제작한 웨어러블 엔젤렉스M(의료기기 2등급)은 하지 불완전 마비 환자의 재활치료를 도와주는 장비다. 복지관과 병원 재활치료실 등에서 쓰고 있다. 리워크 로보틱스에서 만든 리스토어는 천으로 만들어진 웨어러블이다. 역시 재활 프로그램에서 환자가 걷는 연습을 하는 데 쓰인다. 이미 FDA 승인을 받았고, 생활용으로도 널리 쓰일 수 있다. 지난 CES 2020에서 삼성전자가 공개한 웨어러블 보행 보조 로봇 젬스(GEMS) 시리즈는 일상에서 좀 더 안정적으로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용자 필요에 따라 고관절이나 무릎, 발목 등에 착용해 쓸 수 있다. 스웨덴 바이어서보가 개발한 배터리 구동 웨어러블 장갑 아이언 핸드를 끼면, 착용자의 힘을 20%까지 증가시킬 수 있다고 한다.

▲삼성전자 보행 보조 로봇 젬스(GEMS)와 AR 글래스를 착용하면, 가상의 트레이너와 대화하며 운동 기록과 실시간 몸 상태 등의 정보를 활용해 운동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출처: 삼성)

웨어러블은 일종의 전기 자전거다. 그냥도 탈 수 있지만, 장치의 도움을 받으면 훨씬 편해진다. 비싼 가격이 보급에 걸림돌이 되고 있지만, 쓰고 싶어 할 곳은 정말 많다. 체력 부담이 덜하다면 현장에서 일할 사람도 늘고, 나이 든 사람도 계속 일할 수 있다. 무엇보다 고령화가 되어 가는 사회에서, 노후에 지금보다 인간적으로 살 수 있게 도와준다. 다만 아직 보급 초기라 많은 부분에서 개선이 필요하고, 오작동이나 악용에 대해 미리 생각해 둘 필요도 있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