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세계 최대 디스플레이 학회 SID(Society for Information Display)가 주최한 'Display Week 2021' 행사에서 삼성디스플레이 김용조 상무(CAE팀장)는 '디스플레이를 위한 인공지능과 머신러닝(AI and Machine Learning for Display)'이라는 주제로 온라인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이 강연에서는 디스플레이 패널 연구, 개발 영역에서 AI(인공지능)를 활용한 시뮬레이션 및 디자인 최적화 그리고 이를 구현한 실제 사례들이 소개됐습니다.

AI의 영역이라고 하면 보통 알파고(AlphaGo)가 바둑을 둔다거나 고도화된 외국어 번역, 그리고 최근에 자주 볼 수 있는 챗봇(Chatbot) 같은 서비스를 떠올리기 쉬운데요. 디스플레이 패널을 실제로 설계하고 제작할 때도 AI 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디스플레이 제조에 AI를 적용한다는 개념이 아직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오늘 인터뷰에서 만난 삼성디스플레이 김용조 상무는 점점 고도화되는 디스플레이 개발 환경에서 AI 시스템의 개발과 적용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의 영역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Q.삼성디스플레이는 디스플레이 개발에 AI 기술을 언제 도입했나요?

AI 관련 기술이 생산 현장에 적용된 건 생각보다 오래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도입된 영역은 제조 부문이었는데요. 불량률을 낮추고 양품 수율을 높이기 위한 검사나 설비 진단 등에 활용되었습니다. 제조 부문에서 AI가 누적된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식이었다면, 현재 연구개발 부문에서는 목표 달성을 위한 시뮬레이션을 광범위하고 빠르게 수행하는 자체 AI 엔진과 기술을 개발∙적용해 최적 결과물을 도출하는 방식입니다. 탐색 범위가 사람보다 훨씬 넓기 때문에 미처 상상하지 못한 놀라운 설계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예전에 알파고와 이세돌 선수가 바둑 경기를 할 때, 알파고가 기존의 방식과는 너무 다른 엉뚱한 수를 두면서도 게임에서 승리한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연구개발 부문에 AI가 최초로 적용된 것은 약 3년 전인데, 폴더블 디스플레이 개발 프로젝트를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굴곡부의 변형을 최소화해서 시인성을 개선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여러 층의 접착제와 유기 필름의 두께 및 재료 특성의 동시 최적화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접히는 형태의 디스플레이는 참고할 만한 연구 자료가 극히 드물어 초기에 실패가 많았고,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기존 인력과 기술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AI의 도움을 받으면 가능할 것 같다고 판단했고, 그때 처음으로 AI를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Q.디스플레이 연구개발에서 AI는 어떻게 활용되나요?

AI는 엔지니어가 실험을 통해 겪는 시행착오를 매우 빠르게 대체하는 역할을 합니다. 엔지니어링 활동의 모체가 되는 재료, 패널, 구동, 모듈 중에서 유기 재료 설계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재료 설계는 엔지니어가 직접 분자구조를 바꾸어 가며 원하는 값에 가까운 것을 고르는 정방향의 설계 활동이었습니다. 즉, 구조를 설계해 보고, 직접 실험을 해보고, 원하는 특성을 어느정도 달성했는지를 확인하는 순서였죠. 실험을 해 보기 전까지는 결과를 알기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AI를 활용한 설계는 순서가 거꾸로 입니다.

엔지니어가 원하는 재료의 특성값을 넣으면 AI가 천문학적인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 해 정답을 찾는 역방향 설계 활동인 셈이죠. 영화 '어벤저스: 인피니티워'를 보면 닥터 스트레인지가 14,000,605번의 미래를 순식간에 내다본 후 최선의 경우의 수를 선택하죠. 현재 디스플레이 연구개발에 적용하는 AI의 역할을 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Q. AI를 도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AI의 패널 설계 결과를 분석하고 있는 엔지니어의 모습

디스플레이 개발 환경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형 패널을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예전의 Full HD 해상도만 하더라도 엔지니어의 직관으로 설계가 가능했습니다. 엔지니어가 도면을 그리고 수정하는 작업을 몇 번 반복하면 원하는 특성을 얻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현재 주로 쓰이는 4K나 8K 설계에서는 원하는 특성을 얻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같은 크기의 TV 패널이라고 가정했을 때 Full HD에 비해 8K의 픽셀 면적은 불과 1/16수준으로 무척 좁아집니다. 즉, 전자회로에 넣어야 하는 요소는 그대로인데 면적이 줄어들다 보니 회로 간섭 등 오작동의 확률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초고해상도 제품은 보다 세밀한 설계가 필요하다보니 인력과 시간이 더 많이 투입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설계 업무 효율 향상을 위해서 이제 AI 기술의 적용은 필수가 되고 있습니다.


Q.연구개발 과정에 AI를 도입했을 때 시간이 얼마나 단축되는지 궁금합니다.

분자 설계를 예로 들면, 100종에 대한 설계 후 특성 계산까지 기존의 매뉴얼 대로 엔지니어가 작업하는 데 모두 15일이 걸렸다면, AI는 30초만에 해냅니다. 약 4만 3천배 정도의 효율이죠. 마찬가지로 패널 회로 설계에서도 AI의 속도는 상상 이상입니다. 예를 들어 엔지니어가 하루에 100가지 도면을 설계하고 검증하기 어려운 반면, AI를 활용하면 64코어 CPU를 장착한 서버용 컴퓨터 1대만으로도 하루 약 64만 건의 설계와 검증이 가능합니다.

결국 기존에는 사람이 모두 해야 했던 작업을 이제는 AI의 도움을 받아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것입니다. AI는 최적화된 루트를 찾는 작업을 담당하고, 엔지니어는 제품 컨셉 기획 등 보다 고차원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돼 업무 능률이 비약적으로 향상될 수 있습니다.


Q. AI는 앞으로 디스플레이 개발의 어느 영역까지 적용될 수 있을까요?

디스플레이 개발 영역을 재료와 패널 설계, 모듈 이렇게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본다면, 모듈은 가장 처음으로 적용이 됐고 재료 쪽은 현재 적용 중입니다. 패널 설계 또한 올해 안으로 본격 적용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이 시스템을 고도화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현재는 엔지니어가 ‘컨셉’을 주면 그 답을 AI가 경우의 수를 탐색하는 방식이라고 한다면, 앞으로는 AI가 컨셉까지 제시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더불어 현재는 재료, 소자, 회로, 픽셀 설계 등 각각의 단위 별로 설계에 적용했다면, 향후에는 이러한 단위 설계를 서로 연결해 AI를 적용하는 보다 고도화된 시스템으로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디스플레이에 적용되는 AI는 이제 막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디스플레이 개발은 유기재료, 패널, 구동, 모듈 등 다양한 기술을 다루는 종합 예술적 성격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풀어야 할 과제도 많습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만큼 AI를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분야입니다. 디스플레이는 국내에서 선도하고 있는 주요한 산업 분야 중 하나인 만큼 학계와 관련 업계의 꾸준한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나날이 복잡해지는 개발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서, 앞으로 긴밀한 산학 협력을 통해 AI를 활용한 디스플레이 연구개발 환경을 탄탄하게 구축해 나가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