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나 월드컵 경기의 개최는 건설, 관광, 컨벤션, 서비스, 전자 등 모든 산업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어왔다.

일본의 전자 산업계는 이번 도쿄올림픽을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다. 특히 전 세계로 송출되는 중계방송을 통해 자신들의 영상 관련 기술을 홍보할 기회로 보았다. TV 시청자들의 눈에는 경쟁하는 선수들이 보이지만, 올림픽과 같은 글로벌 이벤트의 이면에는 전자업계의 시장확보를 위한 치열한 전쟁도 숨어 있다.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전자업계가 갈고 닦은 무기는 초고화질 8K 영상 시스템이다. 아직 세계적으로 4K UHD 해상도의 방송도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4배의 화질을 가진 8K 영상은 오버 스펙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기술 발전 추세를 볼 때 초고화질 영상 시스템은 머지않아 대량으로 파급될 것이다.

사람의 감각은 더 높은 품질에 잘 감응하고 몰입한다. 그래서 우리의 시각도 더 좋은 화질을 보면 다시 낮은 화질로 되돌아가기 어렵다. 스크린이 크고 고화질일수록 임장감(臨場感)과 현장감(現場感)이 높다. 임장감(presence)은 그 장소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고, 현장감(reality)은 그 장소가 눈앞에 실재하는 것처럼 펼쳐진다는 느낌이다. 초고화질은 구석기 동굴벽화 이래 사실적인 재현(representation)을 향한 노력의 정점이다.


아날로그부터 디지털까지, 해상도의 변천사

영상 품질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해상도는 지난 20년간 드라마틱한 발전을 보여주었다. 20년 전 아날로그 영상을 디지털로 전환할 때의 기준 해상도는 세로 방향으로 480픽셀이었다. 영상 가전제품의 광고에 ‘수평 해상도 360선 고화질 영상’ 같은 문구도 있던 상황이었으므로 480선의 해상도는 분명한 발전이었다. 게다가 여러 번 복사하거나 편집해도 화질의 손상이나 노이즈가 생기지 않으니 디지털 영상의 장점은 큰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시대의 전환기에는 늘 그렇듯, 아날로그 영상에서 디지털로 변환하는 기술 규격도 업체와 단체에 따라 여럿 등장하고 사라졌다. 공영 디지털 방송은 1998년 영국의 BBC가 세계 최초로 개시했고,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도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는 2001년 4개 채널의 디지털 방송을 시작했는데 기존 아날로그 방송 콘텐츠와 브라운관 TV 보유자를 위해 상당히 오랫동안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병행 방송이 이루어지다가 2013년 완전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했다.

아날로그부터 디지털 방송으로의 전환은 시청자들에게 전혀 다른 시각 경험과 함께 소통의 기회를 제공했다. 정사각형에 가깝던 4:3의 화면 비율도 가로로 긴 16:9 비율로 늘어났고, 해상도를 구분하는 단위도 아날로그 방식의 ‘선(line)’ 개념에서 픽셀(pixel)로 바뀌었다. 기존 480픽셀 영상을 표준 해상도(Standard Definition)로 삼고, 그보다 증가한 720p를 고해상도(High Definition)로, 세로 1080픽셀은 HD의 최고 해상도라는 의미에서 ‘Full-HD’로 불렀다. 고해상도 영상은 훨씬 더 섬세하고 화려해서 마치 화면이 살아있는 듯 보였다.


해상도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 기존 고화질 TV가 표준 색영역(SDR)을 구현하는 데에 비해서 HDR 색영역은 실재하는 원본 영상의 색영역을 최종 시청자의 눈 앞에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목적이다. SDR처럼 영상 촬영 후 편집과 가공, 출력과 전송, 디스플레이 작동의 과정에서 컬러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원래 목적이다.

완전 디지털 방송으로의 정착 시기부터 이미 우리나라 방송국과 정부는 HD 영상을 넘어서는 초고해상도(UHD) 방송 시스템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4K UHD는 세로 2160p 해상도로 면적 대비 Full-HD의 4배에 해당하는 고화질 규격이다. 2014년 무렵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의 UHD 방송 시험에 대응하는 목적도 있지만, 미래의 고화질 영상 시장을 선점하려는 의도도 작용했다. 그 결과 2017년 7월에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지상파 UHD 방송을 시작했다. 초고해상도 디지털 방송은 단지 화질이 더 좋아졌다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K)가 미국의 방송표준 ATSC 3.0 규격을 국내 실정에 맞춰 제정한 표준규격(TTAK.KO-07.0127)을 보자. 초고선명 UHD 화질과 함께 고휘도∙고명암비(HDR), 고색 재현(WCG), 고프레임률(HFR) 등 4개 요소를 기술적 기준으로 두고, 몰입형 입체 음향과 양방향 서비스(VOD)까지 포함하고 있다. 현재 세계 시장에서 팔리는 TV의 절반은 UHD 해상도다. 특히 2020년 말 고화질 TV 판매량은 코로나 19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급격하게 증가했다. 집 밖으로 나가기 힘들게 되니까 집안에 큰 TV를 들이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 결과 4K TV의 보유량은 전 세계적으로 5억 대를 넘었고 이제 더 이상 고가의 제품이 아니다. 불과 5년 만에 우리의 시각은 FHD로부터 4배의 해상도에 적응했다.


영상에 생동감을 불어 넣는 색 영역

고화질을 결정하는 요소에는 해상도와 함께 컬러 구현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세밀한 해상도가 영상을 사실적으로 구현한다면 폭넓은 색상은 생동감을 부여한다. 그래서 초고해상도 화질을 위한 규격에는 해상도뿐만 아니라 색 영역(color gamut)이라 부르는 색상 기준도 포함된다. 전체 범위를 뜻하는 ‘gamut’이라는 용어는 원래 음악에서 사람의 목소리나 악기로 낼 수 있는 전체의 음계를 일컫는 말이었다. 색 영역이라는 용어는 그래서 영상 처리 장비나 디스플레이 장치가 낼 수 있는 전체의 컬러 영역을 지칭한다. 음역이 가청주파수에 근거하는 것처럼, 색 영역도 당연히 인간의 시각에 근거를 둔다.

▲ CIE 1931 색 공간 그래프

인간이 구분할 수 있는 색의 범위를 표현한 색 공간 그래프는 보통 CIE 1931을 사용해 왔다. 이것은 국제조명위원회(CIE)가 1931년에 제정한 색 공간 규격이다. 인간의 시각 체계에서 컬러에 감응하는 3색(RGB)의 원추세포 구조에 맞추어 XYZ의 각 방향으로 색채 함수를 수학적으로 공식화했다. 평면에 구현하기 위해 밝기와 색상의 2차원으로 변환한 것이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흔히 접하는 CIE 1931(B) 색 공간 그래프이다.

이 색 공간 그래프에는 가시광선 단색광의 파장이 나노미터(nm) 단위로 표시되어 있는데 그래서 이것을 색상분포도라고도 한다. 영상 관련 장치, 예를 들어 카메라, 컨버터, 모니터, 조명, 프린터 등의 품질을 논할 때는 반드시 이 색상분포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컬러 TV도 없던 90년 전에 제정한 규격이지만 아직 지구상의 어떠한 장치도 이 색 영역 전체를 구현할 수 없다. 단지 이 색 영역은 가장 이상적인 기준으로 활용될 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 색 영역을 기반으로 구현할 수 있는 색 범위를 확대하려는 노력의 과정이다. 1980년 무렵 흑백 TV에서 컬러 TV로 전환될 때까지 살아있는 컬러 영상은 오직 극장에서 영화로만 볼 수 있었다. 컬러 방송이 전국적으로 시작된 후에도 영화의 컬러와 방송의 컬러는 조금 다르게 보였는데, 그것은 방송과 영화의 색 영역 기준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1915년에 시작된 컬러 영화는 필름의 물성과 영사기의 광원 특성에 맞게 발전되었다

▲ NTSC 컬러 테스트 화면

1954년 미국에서 처음 컬러 방송이 시작될 때 NTSC 색 영역의 기준을 영화에서 빌려왔었다. 그러나 전자기 테이프와 브라운관 TV의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기준 전체를 충족하지 못한 상태로 아날로그 방송은 종료되었다. 고화질 디지털 방송을 준비하면서 1999년 제정된 HDTV 규격(ITU.RBT.709)은 과거 NTSC 색 영역보다 훨씬 줄어든 sRGB 정도의 범위였다.

1990년에 제정된 sRGB는 저가형 모니터도 충족시킬 수 있는 좁은 영역인데, NTSC보다 녹색역의 분포가 약 20% 정도 줄어든 범위다. 이상적 기준보다는 실제의 구현 가능성에 치중한 결정이었지만 과거로의 회귀였던 셈이다. 다행히도 이렇게 보수적인 결정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2012년 제정된 초고화질 UHD TV의 색 영역 기준(ITU.RBT.2020)은 HDTV 기준의 두 배가 넘는 범위를 포괄한다. 단지 색 범위의 확장뿐만 아니라 색상을 구현하는 비트 심도를 12비트까지 포함하고 있다. HDTV 기준 8비트 심도에서 RGB 삼원색으로 구현 가능한 색상은 24비트, 즉 1680만 컬러였던데 비해, UHD 기준 12비트 컬러는 이론적으로 687억 색상의 구현이 가능하다. 인간의 눈이 구분할 수 있는 컬러의 수를 훨씬 상회하는 규격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는 컬러 디스플레이 기술

10비트 이상으로 확장된 색 범위를 광색역 즉, WCG(Wide Color Gamut)라고 부르는데, 높은 수준의 동적명암비(HDR) 즉 넓은 색 영역을 구현하는 기준이 된다. 아날로그 TV 시절의 이상적인 색 영역이었던 NTSC 범위나 HDTV의 좁은 sRGB 영역은 원래 브라운관 TV를 위한 규격이었다. TV 뒷면의 전자총을 통해 음극선관(CRT)의 전면 유리에 칠해진 형광물질을 자극해서 영상을 만드는 원리로 작동하던 브라운관 TV. 백 년 넘게 영상의 세계를 지배했지만 이제는 찾아보기도 힘들어졌다.

▲ 국립현대미술관에 1988년부터 30년간 상징물처럼 자리를 잡았던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작품 <다다익선>은 CRT 모니터의 단종으로 인해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디스플레이 기술의 빠른 발전과 변화는 예술 영역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중앙에 기념비처럼 우람하게 서 있던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조형물 <다다익선>은 더 이상 브라운관을 수리하거나 교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철거되었다. 백남준이 새로운 캔버스라며 브라운관 TV를 개조하며 시작한 비디오아트는 불과 50년 만에 수명을 다했다. 그 주된 이유가 디스플레이 기술의 변화 때문이라니 아이러니하다. 물론 미디어아트의 이름으로 영상 예술가들이 활동하지만 CRT 특유의 어른거리고 흔들리는 화면이 만들어 낸 특유의 조형미는 이제 사라져 버렸다.

2000년이 지나면서 디지털 영화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때에도 많은 영화인들이 필름이 가진 독특한 조형미를 잃어버릴까 조바심을 냈다. 그러나 셀룰로이드 필름은 그 자체로 예술적인 매체였지만 필름 산업은 공해 물질을 다루고 배출하는 악당 업종으로 인식이 변화했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필름으로 영화를 찍어야 참된 예술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필름 영화의 영상미는 4K 해상도라야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전문가들이 많았다. 초고화질 디지털 영상 기술은 과거 필름 영상의 장점을 거의 다 재현하게 되었다.

▲ 스포츠 경기 사진 중에서 명암과 채도 영역을 증가시킨 HDR 이미지는 더 생동감 넘치는 효과를 보여준다. 가장 어두운 부분과 밝은 영역의 폭이 증가할수록, 채도가 넓어질수록 이미지는 더 입체적으로 보이게 되고, 마치 눈 앞에 있는 것 같은 현실감이 증가한다.

이제는 그보다 더 나아가 HDR 영상과 고프레임율(High Frame Rate) 영상이 대중화되었다. 영상의 촬영 단계부터 포스트 프로덕션을 거쳐 시청자의 눈앞에 놓인 디스플레이 장치까지 생생한 이미지가 전달되고 있다. 영상 품질의 저하가 가장 극심했던 부분이 최종 디스플레이 장치였는데, 이마저도 신기술로 극복하고 있는 중이다.

색 재현을 향한 오랜 인류의 꿈이 이상에서 현실로 다가오는 중이다. 이미 가상현실(VR) 영상에서 미리 맛본 것처럼,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옛말은 앞으로 첨단 디스플레이 장치가 현실을 능가할 때 다시 회자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