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팩트가 아니라고 밝혀지면 우리는 당혹감을 느낀다. 그러나 상식을 깨는 사실을 아는 것은 꽤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은 우리의 상식을 깨는 과학적인 현상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따뜻한 물이 차가운 물보다 오히려 더 빨리 얼게 되는 ‘음펨바 효과’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그럼 지금부터 이 현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아프리카 탄자니아 중학생의 이름을 딴 ‘음펨바 효과(Mpemba effect)’

1963년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한 고등학교에 어느 물리학자가 초청받아 강연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을 받는 시간이 되자 학생 중 한 명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중학교 요리 시간에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시간이 있었어요. 따뜻한 상태의 아이스크림 재료를 덜 식힌 것과 미리 만들어 식힌 것을 냉장고에 같이 넣어두었더니 덜 식혔던 따듯한 쪽이 오히려 먼저 얼었습니다!” 이 학생은 그 현상이 신기해 이후에도 미리 식힌 것과 덜 식힌 것을 같이 냉장고에 넣었지만, 항상 온도가 높은 것이 먼저 얼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마침 물리학자가 강연을 하러 왔으니 그 원리가 무엇인지 물어본 것이다.

주변의 학생들과 선생님은 음펨바(Erasto Mpemba) ‘네가 뭘 잘못한 것 아니냐’라고 하며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놀렸다. 그러나 질문을 받은 물리학자 데니스 오스본 (Denis Osborne)은 달랐다. 오스본은 자신이 실험을 다시 해본 후 왜 그런 것인지 알려주겠다고 한 뒤에 실제로 실험을 했고 음펨바와 같은 결과를 얻었다. 오스본은 실험을 다시 엄밀하게 진행했고 또 같은 결과를 얻었지만 왜 그런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오스본은 이 실험 결과를 학술지에 발표했는데 최초로 이 현상을 발견한 음펨바를 공동 저자로 등록했다. 그리고 그가 이 현상에 대해 처음 의문을 제시했다는 사실도 밝힌다. 그래서 따뜻한 물이 차가운 물보다 빨리 어는 현상에 대해 ‘음펨바 효과(Mpemba effect)’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고대에도 발견 된 음펨바 효과

▲ 한 겨울 뜨거운 물을 공중으로 흩어 뿌리면 ‘음펨바 효과’를 관찰할 수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음펨바 현상은 사실 꽤 오래전부터 언급되었던 일이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책 ‘기상학(meteorology)’에 이 현상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만약 물이 미리 데워지면 이는 물을 더 빨리 얼게 하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물을 빨리 식히고 싶을 때, 물을 햇볕에 쬐는 것으로 시작한다. 폰투스 주민들은 얼음 위에서 물고기를 잡으려 구멍을 뚫고 진을 칠 때 갈대 둘레에 따뜻한 물을 부어서 갈대를 얼린다. 그러면 얼음이 더 빨리 얼기 때문이다. 여기서 얼음은 갈대를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 설명은 반대되는 성질에 둘러싸여 있을 때 그 성질이 더 강하게 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안티페리스타시스(antiperistasis) 법칙’에 포함되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뿐만이 아니었다. 근대 과학철학의 새로운 역사를 연 프란시스 베이컨도 “약간 미지근한 물이 완전히 차가운 물보다 더 쉽게 언다.”고 했고 르네 데카르트도 “오랜 시간 불에 가열한 물이 다른 것보다 더 빨리 언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스코틀랜드의 과학자 조세프 블랙도 이전에 끓인 물과 끓이지 않은 물을 비교하여 끓인 물이 더 빨리 얼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일견 상식에 어긋나 보이는 주장은 쉽게 잊히고 사람들은 당연히 찬물이 더 빨리 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물리학자가 실험을 통해서 확인한 사실이 권위 있는 학술지에 게재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음펨바 효과의 증명

음펨바와 오스본은 냉장고의 아이스박스에 70mL의 물이 든 100mL짜리 비커를 넣고 실험을 했다. 25℃의 물이 어는데 가장 많은 시간이 걸렸고 90℃의 물이 가장 빠르게 얼었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많은 과학 관련 미디어에서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이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 원리를 파악하고자 하는 많은 과학자의 연구가 시작됐다.

이후 음펨바 현상을 설명하는 몇 가지 주장이 등장했다. ‘뜨거운 물은 내부 흐름이 활발해서 물 안쪽까지 고르게 냉각돼 그렇다든가’, ‘찬물은 표면에 서리가 껴서 단열 효과를 낸다’는 등의 다양한 주장이 나왔지만 모두 실제 현상을 명확히 설명하지는 못했다.

2012년에는 영국의 왕립화학학회(Royal Society of Chemistry)가 음펨바 효과를 설명하는 경연대회를 열고 1,000파운드의 상금을 걸었는데 과냉각과 대류 현상을 원인으로 지목한 니콜라 브레고비치가 대회에서 우승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보기에 니코라 브레고비치의 설명은 아직 정확한 규명이라 보기엔 미흡한 점이 많았다.


음펨바 현상과 수소·공유결합의 상관 관계

2013년 싱가포르 난양 공과대학의 순장칭 교수와 장시 박사팀이 음펨바 현상이 수소결합과 공유결합의 상관관계에서 발생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해당 논문은 당시 과학자들 사이에서 기존의 물리 화학적 이론에 가장 부합하는 설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순장칭 교수와 장시 박사팀의 이론을 이해하려면 우선 두 가지 결합에 대해 알아야 한다. 먼저 물 분자는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한 개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은 서로 ‘공유결합’으로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공유결합’이란, 화학 결합 중 전자를 원자들이 공유하였을 때 생성되는 결합을 말한다. 즉, 물 분자는 내부에 공유결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물이나 얼음처럼 물 분자가 여럿 모여 있는 경우에는 분자와 분자 사이를 잇는 결합이 있는데 이를 ‘수소결합’이라고 한다.

분자를 서로 연결하는 결합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중 수소결합은 힘이 강한 편에 속하지만, 수소결합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물 분자를 이루는 공유결합보다는 아무래도 약하다. 정리해보면 물 분자 내부는 수소와 산소가 공유결합으로 묶여 있고, 물 분자들 끼리는 수소결합으로 묶여 있다.

▲ 찬물과 더운물의 수소·공유결합 분자 구조

온도가 높은 물은 에너지를 많이 가지고 있고 온도가 낮은 물은 에너지를 적게 가지고 있다. 에너지가 적은 낮은 온도의 물 분자는 진동을 적게 하니 분자와 분자 사이의 거리가 짧다. 그래서 분자를 서로 묶어 두는 수소결합의 힘이 더 강해지는데 이 수소결합이 물 분자의 수소나 산소를 끌어당기는 힘이 세다 보니 분자 내의 산소와 수소 사이가 조금 멀어진다. 이렇게 공유결합의 길이가 길어지면 이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가 더 필요하다.

반대로 높은 온도의 물 분자는 진동을 많이 하므로 분자 사이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수소결합도 상대적으로 약하고 분자 내부의 원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약하니 분자 내부의 공유결합은 낮은 온도의 물보다 더 짧은 길이로 유지될 수 있고 에너지가 적게 들어간다. 따라서 물 분자는 에너지를 내놓는다.

즉 물 분자는 가열하면 공유결합 길이를 줄이면서 에너지를 내놓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높은 온도의 물과 낮은 온도의 물을 같은 조건에서 동시에 냉각시키면 높은 온도의 물이 낮은 온도의 물보다 더 빠르게 에너지를 방출한다. 싱가포르 연구팀이 실제로 물의 초기 온도를 달리해서 냉각 시 에너지 방출량을 측정한 결과가 바로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순장칭 교수는 “물이 에너지를 방출하는 속도는 물이 가진 초기 에너지 상태, 즉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음펨바 효과의 논쟁은 현재진행형

이것으로 높은 온도의 물이 낮은 온도의 물보다 더 빨리 어는 문제가 해결되는 듯했지만, 또 다른 주장이 제기되었다.

2016년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헨리 부리지박사와 폴 린던 박사는 “음펨바 효과에 대한 의문: 뜨거운 물은 차가운 물보다 더 빨리 식지 않는다. (Questioning the Mpemba effect: hot water does not cool more quickly than cold)”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이들은 실험에서 물이 0℃까지 냉각되는 과정과 다시 얼음으로 동결되는 과정을 두 가지로 나눠 관찰했다. 그리고 물이 0℃까지 내려가는 과정에서 따뜻한 물이 차가운 물보다 더 빨리 냉각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음펨바 효과가 사실 실험이 정교하지 못해 일어나는 착각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 음펨바 효과가 물의 냉각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라는 주장, 냉각 속도보다는 액체 상태에서 얼음으로 동결되는 과정이 빠르다는 주장 등이 서로 맞서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주장이 서로 경쟁하는 것은 음펨바 효과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논쟁이 없는 경우가 드물다. 보통 우리는 이런 논쟁이 끝난 뒤 살아남은 깔끔한 설명만 접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과학의 발전이란 이런 논쟁이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백 년 동안 이어지면서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논쟁에서의 승리는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실험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런 진행 중인 논쟁을 지켜보는 것 또한 과학의 즐거움 중 하나라 하겠지만 일단 음펨바 효과에 대한 적절한 설명은 조금 더 시간이 걸릴 듯하다. 음펨바 효과에 대한 결론을 기다리는 사이 냉동실에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을 넣고 실험을 먼저 해보는 것은 어떨까? 실험을 통해서 각자 음펨바 효과를 직접 확인해 보는 것도 과학이 주는 재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