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기술의 발전은 우리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냉장고가 알려주는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고 목소리만으로 집안의 기기를 간편하게 관리합니다. 놀이동산에 직접 가지 않아도 VR기기로 얼마든지 스릴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술 작품 감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눈으로만 감상하던 것에서 이제는 오감을 활용해 예술 작품과 능동적 상호작용도 가능합니다. 지난 10월 서울 동대문에 문을 연 아트랙티브(Art+Interactive) 테마파크 ‘라뜰리에’는 IT 기술과 만난 예술 작품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눈에 비친 19세기 프랑스를 디오라마(diorama)와 IT · 영상 기술을 활용해 표현, 관람객들이 마치 실제 명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색다른 경험을 선사합니다.

 

말하고 움직이는 명화 속 주인공들

라뜰리에는 총 다섯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예술가들이 즐겨 찾았던 △테르트르 광장, 예술가들의 아지트 △몽마르뜨 거리, 싱그러운 꽃 내음 가득한 △마들렌 꽃시장, 고흐의 노란 집이 있는 △라마르틴 광장, 프로방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포름 광장. 각각의 공간 특성에 맞는 IT 요소들이 관람객들의 체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라뜰리에로 입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금장을 두른 시간의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문이 열리면 19세기 프랑스로의 시간 여행이 시작됩니다. 맨 먼저 관람객들을 맞는 곳은 예술가들이 즐겨 찾았던 테르트르 광장입니다. 갓 구운 빵 냄새를 풍겨오는 베이커리와 실제와 흡사한 소품들로 꾸며진 부티크 샵 등 거리의 상점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상점의 창을 들여다보면 가게마다 손님이 북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은 모두 3D 영상으로 구현해 관람객에게 재미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 드레스를 차려 입은 귀부인들, 담소를 나누는 손님들의 모습이 3D 영상으로 보여집니다.

테르트르 광장을 지나면 인상주의 화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라뜰리에 갤러리가 나옵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장 베로(Jean Béraud), 폴 세잔(Paul Cézanne) 등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액자 속 인물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살짝 들어올리는 등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영화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마법 액자가 현실화된 느낌입니다.

명화 속 인물들과 직접 대화도 나눌 수 있습니다. 작품 주변에 설치된 센서와 연결된 인공지능(AI)을 통해 관람객들의 목소리를 인식한 뒤 단어나 문맥을 파악해 대답합니다. 딥 러닝 기술이 적용되어, 누적 대화 건수가 늘어날수록 대화 패턴이 다양해지고 맞춤화 된 이야기도 즐길 수 있습니다.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작품 <발코니>의 등장인물인 화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에게 “그곳 날씨는 어떤가요?”라고 질문하자 “여긴 가을이라 날씨가 좋답니다. 거기 날씨는 어떤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질문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맞는 답변을 하는 모습에서 마치 살아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듯한 리얼함이 느껴집니다.

▲ 명화 속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명화 속 인물들과의 유쾌한 대화를 마치고 나면 예술가들의 아지트, 몽마르뜨 거리에 다다르게 됩니다. 서늘한 실내 공기와 머리 위로 흩날리는 눈송이가 한겨울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몽마르뜨의 밤 풍경은 프로젝션 맵핑(Projection Mapping, 벽면이나 투사체에 프로젝터를 이용해 다양한 영상 이미지를 구현) 기술로 표현돼 한층 생생한 공간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귓가에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를 따라가면 몸을 좌우로 움직이며 열심히 연주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보입니다. 맞은편에는 몽마르뜨를 대표하는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가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물체의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게임 엔진 기술이 적용돼 한층 더 리얼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 게임 엔진 기술 적용으로 리얼리티를 살린 캐릭터들. 피아노 연주하는 소녀(좌)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우)

 

디지털 기술 입은 명화, 현실이 되다

몽마르뜨 거리를 지나 마들렌 꽃시장에 도착하면 반드시 들려야 할 곳이 있습니다. 바로 오랑주리 미술관입니다. 이곳에서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수련 연작을 미디어 아트로 상영하고 있습니다. 처음 방에 들어서면 은은한 수련 향기가 코끝을 자극합니다. 잠시 후, 천장을 제외한 바닥과 사방에 모네의 수련이 펼쳐집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새 소리도 들려오는 듯 합니다. 시각에서부터 후각, 청각까지 오감을 자극하는 풍광에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 미디어 아트로 구현된 모네의 수련

프랑스 문호 에밀 졸라(Emile Zola)와 홀로그램 캐릭터들이 함께 대화하며 고흐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파헤치는 토크쇼, 명작 X-파일도 놓쳐선 안될 감상 포인트입니다. 배우와 관객 사이에 설치된 투명 유리벽 위로 고흐의 우체부, 주치의, 단골카페 여주인이 홀로그램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마치 실제로 살아있는 듯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홀로그램 캐릭터들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 명작 X-파일 속 홀로그램 캐릭터들(이미지 출처 : 라뜰리에)

자전거로 책장 위를 달리기도 하고 책상 위에 놓인 주전자를 기울여 차를 잔에 채우는 등 홀로그램 캐릭터들의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이 놀라움을 자아냅니다. 관람객들은 “현실 공간에 반영된 홀로그램 캐릭터들이 무척 인상적이다”, “손동작이나 발걸음 등 디테일한 부분들이 어색함 없이 잘 표현돼 무척 신기했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라뜰리에의 종착지는 고흐가 즐겨 찾던 밤의 카페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포름 광장입니다. 실제로 고흐의 작품 <밤의 카페 테라스>와 <밤의 카페>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차와 식사를 즐기며 역사 속 인물들과 대화하다 보면 마치 명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듭니다. 고흐를 비롯해 고흐의 단골카페 주인인 지누 부인, 19세기 초상 사진의 거장 나다르(Nadar)에게 질문하는 관람객들의 표정에서 신기함과 놀라움을 엿볼 수 있습니다.

▲ <밤의 카페>를 그대로 재현한 카페 내부 모습(좌)(이미지 출처 : 라뜰리에), 영상으로 구현된 고흐의 모습(우)

▲ 그림 그리는 고흐, 사진작가 나다르와 대화를 나누는 관객들

색다른 방법으로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하게 됐다는 유기현(25), 김지원(24)씨는 “선명한 해상도와 끊김 없는 영상으로 구현되는 예술 작품들을 보며 기술의 발전을 새삼 실감했다”며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미술사적 지식을 이해하는 데 IT 기술이 큰 도움이 됐다. 앞으로도 이런 체험 공간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빅 데이터, 인공지능, IoT 등 정보통신 기술이 오프라인과 결합해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는 ‘4차 산업혁명’. 문화 예술 분야와 만나 새로운 체험이 가능해졌습니다. 예술적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IT 기술 혁신, 앞으로 어떤 미래를 펼쳐갈지 기대됩니다.